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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아주 가끔,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 △ 2003년산 영화 . 포스터는 나중에 수정되었다. 토씨 하나 안 빠뜨리고 분명하게 기억하는 카피 하나가 있다. 아주 가끔,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 라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포스터에 쓰여진 카피였는데, 영화는 정말로 눈이 부시도록 말아먹었다. 포스터처럼 구름 뒤편으로 사라졌다. 나도 아마 이 멋드러진 포스터와 카피가 아니었으면 진즉 기억에서 지워버렸을거다. 2003년, 이 포스터를 보자마자 너무나 반해서 어딘가에서 한 장을 구해가지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들여다 본 걸로 기억한다. 오로지 이 포스터에 너무나 심취해서 정말로 영화로 대한 궁금증은 하나도 일지 않고 아주 가끔,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 만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온종일 그러고 싶을만큼. 살면서 아주 가끔,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은 의.. 더보기
여름은 수정과 함께 △ 나의 섬세한 취향을 대놓고 건드리는 대표님의 센스. 면접날, 팀장님이 시퍼렇게 차가운 수정과를 내주셔서 좋았다. 선배가 나에게 그토록 입사 권유를 할때도, 냉장고를 활짝 열어 사진 찍어 보내주지 않았던가. (이래서 직원 복지는 중요하다!) 냉장고 앞에서 냉정하려 애썼지만, 냉정의 부문에서는 냉장고가 나보다 한수 위. 끝내 냉정하지 못했던 나는 입사 첫날부터 냉장고 앞에 무릎을 꿇고 수정과의 노예가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무릎을 꿇는다. (수정과가 맨 아래칸에 있거든.) 마실 것을 무척 좋아해 까페에 가면 누구보다 제일 빨리 마시고, 온갖 즙이란 즙은 다 좋아하는 나에게도 유독 어여뻐하는 음료가 있다. 바로 수정과. 이상하게 어머니와 나는 식食취향이 삐딱선을 타는지, 내가 몹시 뚜렷하게 좋아하는.. 더보기
2015년 6월 25일 △ 간밤에 벌레가 나왔다. 여자 둘이 두려움에 떨며 수긍했다. "꼭 결혼하자!" 새벽. 반도 못 뜬 눈으로 누워서 누군가의 글을 읽다가 '죽이네' 라는 한마디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죽이네. 진짜. 잠도 못 깨고 읽었는데도 좋네. 내 글도 누군가한테는 이 정도일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인다. 잠을 덜 깬 채로 찾아서 읽고는 아직 반쯤 수면 상태인 몸에서 기어이 '죽이네' 한 마디가 나오는거지. 절반 읽은 에서는 인정욕구를 포기하면 세상 모든게 편해진다고 거듭거듭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데도, 누군가에게 '잘 쓰네요. 원래 나 칭찬 안하는데. 잘 쓰네' 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야단스레 쏟아지는 기분이라 어쩔 도리가 없겠다. 피곤한 몸을 싣고 한 시간 여를 달려 귀가. 씻고 굽은 새우등을 하고 모니터를.. 더보기
총량의 법칙 : 읽기와 쓰기에 관하여 △ 둘의 공통점. 맛있다. '지랄총량의 법칙'을 비롯, 갖가지 유명한 총량의 법칙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삶의 어느 품목에 관해서는 분명히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요즘 몸으로 느끼는 어떤 품목은 바로 읽기와 쓰기. 오늘로 '한 주에 책 두 권 읽고 또 쓰기' 2주차에 접어들었다. 운 좋게도 1주차에서 읽은 의 서평을 저자분이 보시고, 새로 펴낸 책을 싸인과 함께 보내주시기로 한 이상! 나의 독서는 영원히 계속되지는 못하더라도 당분간은 계속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일주일에 두 권, 그러니까 삼일에 한 권은 읽고 또 써야한다는 묵직한 부담감을 가슴에 안으면서 나의 큰 줄기 두 가닥이 색을 달리하고 있다. 바로 읽기와 쓰기에 관한 것. 책을 읽어야하니 자연히 그 마약같던 웹툰을 끊게됐다. (얼마갈지는 .. 더보기
족같은 세상 : 진품명품 티비쇼 + 안녕하세요오오 집은 가장 축소된 사회 단위로, 한 종족이 무리를 지어 모여사는 공간이다. 한 집家에 사는 종족이라해서 이름도 '가족'이다. 오크족이나 병만족처럼, 종족의 이름에 다름 아니란 말씀. 시장경제의 차가운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 '가족'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인데- '또 하나의 가족' '가족같은 ○○'- '가족같은 회사'를 다니는 이들에게 '가족같이 대해주느냐'고 물어보면 '가를 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족같다는 거다. 족은 알아서 생각하시고. 한 종족은 그들만의 암묵적인 룰이 있다. 당연히 가족에게도 그들만의 룰이 있고. 구성원들은 암묵적으로 이를 지켜나가거나 깨부수려다 깨지기도 하면서, 어쨌든 그들만의 룰을 발전 계승해나간다. 많은 기업들이 차용하는 '가족같은'이 사실.. 더보기
도너츠 원정대 △ 츄이스티가 맛있긴 한데, 아무래도 모양은. 도너츠를 잃어버렸다. 요즘따라 뭘 이렇게 자꾸만 잃어버리는지. 아끼는 물건 잃어버리는게 나한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일주일 전의 우산에 이어 두번째다. 어제도 오늘도 도너츠를 찾느라 가방을 뒤집어 싹 털고, 친구집 구석구석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건물 입구까지 나가서 이동경로를 거꾸로 흝어보지만 없다. 회사에 두고 온걸까. 분명히 금요일 오후까지는 가지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건물을 청소하기 전에 일찍 출근해 도너츠를 찾아봐야겠다는 나의 말에, 친구가 당장 태워주겠다며 여의도까지 태워준다. 사실 조그만 이어폰 줄감개 하나 찾겠다고 이틀 내내 동동거리는 나도 나지만, 태워주는 친구한테도 참 미안하고 고맙다. 내도 낸데, 니도 참 니다. 이게 뭐라고 여의도까지 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