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_')()()()/머리

족같은 세상 : 진품명품 티비쇼 + 안녕하세요오오

 

 

 

집은 가장 축소된 사회 단위로, 한 종족이 무리를 지어 모여사는 공간이다. 한 집家에 사는 종족이라해서 이름도 '가족'이다. <반지의 제왕>오크족이나 <정글의 법칙>병만족처럼, 종족의 이름에 다름 아니란 말씀. 시장경제의 차가운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 '가족'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인데- '또 하나의 가족' '가족같은 ○○'- '가족같은 회사'를 다니는 이들에게 '가족같이 대해주느냐'고 물어보면 '가를 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족같다는 거다. 족은 알아서 생각하시고. 

 

 

한 종족은 그들만의 암묵적인 룰이 있다. 당연히 가족에게도 그들만의 룰이 있고. 구성원들은 암묵적으로 이를 지켜나가거나 깨부수려다 깨지기도 하면서, 어쨌든 그들만의 룰을 발전 계승해나간다. 많은 기업들이 차용하는 '가족같은'이 사실은 '족같을'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 당연히 家를 빼야지. 그 기업들은 내 집에 와본 일이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가족들이 으레 이러하겠지, 싶은 공통분모만 쏙쏙 뽑아서 대충 버무린 뒤 불특정 다수에게 그대로 해주겠다는 말이 '가족같이'다. 물론 기업들은 따뜻함, 친밀감, 소속감 따위가 버무려진 가족의 긍정적인 이미지만 슬쩍 빌려써놓고, 구성원들에게는 그대로 해주지도 않는다만. 만약 따뜻하고, 친밀하고, 소속감 넘치게 구성원을 대해준다해도 그 기업은 '족같을' 수 밖에 없는거다. 내 종족은 아니거든.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종특'을 인지하는가. 바로 다른 종족을 만났을 때다. 한 가족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태어나면서부터 집안의 룰에 복종한다. 다른 종족들도 으레 그러려니 싶다. 그러다 가장 축소된 사회 단위인 집을 넘어 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가고 종교단체를 가고 회사를 가고 동호회를 가면서 수많은 종족들을 만난다. 그리고 수많은 종특을 발견하고 놀란다. '너 족같애!' 나도 족이고, 너도 족이다. '너 족같애!'를 좀 길게 풀이하자면 '너는 참으로 너희 가족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구나' 라는 담백한 서술에 다름 아닐진대, 이 말만 들었다하면 종족간의 불꽃튀는 육탄전이 벌어진다. '너 우리집안 들먹이지 말랬쥐이이이이!' 전쟁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 가문이 최고야' 라며, 집안 얘기만 나왔다하면 불부터 내뿜고보는 종특 수호신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있는가하면, 요즘이 어떤시대인가. 과학수사시대 아닌가. 모두가 납득할만한 객관적 수치를 통해 종특의 상중하를 가늠해보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자주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진품명품 티비쇼>. 우리 가문은 말이야 에헴. 우리 가문은 이런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에헴에헴. 마음 같아서는 가족 구성원의 가치를 수치로 매겨보고도 싶을텐데- 이 사회는 사람의 값을 곧바로 돈으로 매기면 인권침해라며 길길이 날뛸 것을 알기에, 사람의 값을 점수로 매겨 돈으로 환산해준다. 귀찮게시리. - 가문의 보물을 대신 가져나와 수치로 환산한다. 그 수치가 높을수록, 광대와 함께 가문부심도 하늘을 향해 승천 중. 조상님! 감사합니다! 역시 우리 종족이여!

(※ 폄하의 의미가 아닙니다. 저도 집안에 보물하나 있으면 껴안고 달려나가서 감정 받아보고 싶네요. 감정받는 그대들이 부러운 내 감정. 악감정 없어. 내 감정 긍정~적. yeah ♪)

 

 

<진품명품 티비쇼>에서 은근슬쩍 가품家品을 끼워파는 이들이 있다면, 대놓고 나와서 가품을 고발하는 이들도 있다. '특종 종특 고발!'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의 안녕하지 못한 그들이다. '안녕하세요오'라고 묵직한 첫마디를 떼는 그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다른 종족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별 문제 없었지만, 다른 종족을 목격한 후 충격을 집어먹고 내 가족의 '족같음'을 고발한다. 가족 구성원들을 끌고 나와서 대국민 심판을 원한다. 

 

 

● 평생 반찬으로 김치전만 해준 엄마 : 늘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집에 가서 국을 먹어본 아들이 깜짝 놀라 엄마를 고발

● 단기간 빵 섭취로 10키로를 불린 여친 : 다른 여자들은 날씬하고 예쁜데 내 여자친구는 빵 먹느라 뚱뚱해져서 고발 (빵 먹어도 계속 날씬하면 그것도 고발감)

● 하드만 먹는 딸 고발 : 냉장고를 없앴는데도 병원 실려갈 때까지 하드만 먹는 내 딸을 아버지가 고발 

● 게임만 하는 남편 고발 : 다른 남자들은 돈 잘벌어오는데 내 남편은 게임템만 사서 고발

● 취미생활만 하는 남편 고발 : 발레에 요가에 바이올린에 성악에... 다른 남편들은 안 그러는데 우리남편만 취미생활이 많아서 고발

 

 

'안녕하세요오' 로 입을 뗀 후 하나도 안녕하지 않은 얼굴로 같은 종족 구성원을 고발하는 그들의 이유는 단 하나다. '다른 가족들은 안 그러는데'다. 이게 다 다른 가족 때문이다. 게다가 굳이 만나 물어볼 것도 없이 종특 프로그램이 쉴 새없이 돌아가지 않는가. 애는 어떻게 키우는지, 시월드는 잘 돌아가는지, 밥은 뭘 차려먹는지, 떡볶이에 설탕을 두스푼 넣는지 세스푼 넣는지까지도. 요즘은 냉장고도 털어보여준다. 내 종족에 대한 자부심이 굳건하다면야 다른 종족들을 들여다보며 '족같네, 나랑 다르네' 하고 넘어가겠으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화살이 내 가족에게로 돌아온다. '족같네, 쟤들이랑 다르네'

 

 

내 종족을 소개합니다

 

 

나도 당연히 살아오면서 수없이 다른 종족들을 마주쳤고, 집에도 가보고 생활상도 나누면서 너와 나의 '족같음'에 대해 이해의 지평을 넓혀왔다. 게다가 혼자 나가 떨어져 지낸 적이 오래라, 구성원 중 가장 객관적인 시선을 가졌다고 자부한다. 내가 몸담은 종족의 특징에 대해서 몇 가지를 알릴까 한다.

 

 

1. 과자를 유난히 많이 먹는다. 식비의 80%가 간식비로 지출된다

 

 

얼마전 기록한적도 있는데, 어머니는 가부장의 끝판왕인 그녀의 아버지 밑에서 심하게 눌려자랐다. 위로는 장남, 밑으로는 공부 잘하는 남동생이 있었었으니 그 사이에 짓눌린 여자의 삶이란 오죽 고단했으랴. 어머니는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부모님 몰래 라면을 다섯개나 끓여 남동생과 먹었던' 기억을 즐거웠다고 했다. 특히 취향에서 자기 뜻을 못 펼쳤던 탓인지, 어머니는 자식들의 취향 부분을 전적으로 지원했다. 먹는 취향도 마찬가지. 어린 아이들은 모두 과자를 좋아하지 않는가. '국희 샌드가 맛있다'고 하면 그 다음날 어머니는 국희샌드를 박스짝으로 사다놓는 분. '질릴 때까지 먹어봐!' 국희샌드를 다 먹고 질리면 어머니는 또 다른 과자를 가득 사놓으며 우리를 신세계로 유혹했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유혹> 이라는 책은 그 당시 나오지도 않았지만, 나왔다고 해도 어머니를 말릴 순 없었을 것이다. '불량 식품도 먹어봐야 안다' 며 어린 우리에게 가장 많은 불량식품을 사준 것도 어머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라면먹자고 라면을 한솥이나 끓여내온 것도 어머니. 학교에 가서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반적인 어머니는 자식들의 건강에 신경을 쓰기에 과자를 주지 않는다' 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던 적이 있다.

 

나는 혼자사는 지금도 과자를 대량구매해서 방안에 쌓아놓는다. 아래의 사진은 어제 고향집에서 발견한 빠다코코낫 박스사진.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 간식이었다. 몇 박스 들이인가 싶어 박스겉면을 보니 12갑 짜리다. 참. 아버지는 청년시절 오리온이라는 제과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종종 커다란 과자선물상자를 집에 들고 왔다. 지금도 나는 과자를 이상하리만치 많이 먹는데, 친구들이 '과자를 그렇게 먹는데 살이 안찐다' 라고 물어보면 '조기교육의 힘이 중요하다' 라고 답한다. 기록으로는 한번에 요맘때라는 아이스크림을 40개 정도 먹은 적이 있다. 맛있어서. 그때는 <안녕하세요>가 없어서 못나갔고, 있었더래도 안 나갔을거다. 다들 이 정도는 먹는 줄 알았으니까.

 

 

 

 

 

 

2. 꽃을 좋아한다 

 

 

종족 모두 꽃을 좋아한다. 특히 아버지는 나이가 들수록 여성호르몬이 창고 대개방을 하는지, 틈만 나면 전화로 꽃 소식을 전해오신다. 라일락이 피었는데 집에 안 내려오느냐. 장미가 활짝 피었다. 아카시아가 지천이다... 라일락 소식에 고향집에 내려간 4월인가 5월께였던가. 나를 보자마자 아버지는 현관에 발도 디밀기 전에, 라일락 꽃가지를 내 콧구멍에 쑤셔넣으며 (문자 그대로!) 라일락 향이 어떠냐고 재촉하였다. 꽃이 잘되는 집은 좋은 기운이 깃든 집이라 하던데, 어머니가 더운 여름에는 꽃들에게 막걸리도 부어가며 여럿 죽였으나 그래도 해마다 굳세게 피어난다. 고맙다 얘들아. 아버지도 이른 새벽에 주방 가위를 들고, 어머니에게 이쁨 받을 요량으로 꽃을 섞어낸다며 동동거리다가 그 길로 당신 목을 뽑힐뻔한 적도 있다. (역시 문자 그대로다)

 

 

 

3. 흥이 넘친다

 

 

부모님 모두 흥이 차고 흘러 넘친다. 어제는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어머니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게 아닌가. 깜짝 놀라 어머니에게 다치셨냐 여쭸더니, 다리가 저려서 그런다며 갑자기 다리 꺾기를 하며 춤을 추었다. 새로운 광고가 나올때마다 길거리든 어디든 아랑곳않고 따라하는 것도 어머니. 올레 광고가 유행하던 무렵에는 엘리베이터에서도 '올!레!' 

 

 

아버지도 웃긴다. 본인을 '하숙생'이라고 표현하시는데 어머니가 누드 김밥을 싼 어느날이었을거다. '누드 김밥 드세요' '난 안먹어. 누드 말고 비키니로 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김밥으로 맞았다. 아버지는 지나친 흥에 따른 무용담도 많은 편인데, 어느날은 딱지를 끊겼으나 경찰을 쫓아가 깎아달라고 사정한 끝에 딱지 요금을 깎아왔다. 여름날 수박을 먹으며 가족들에게 딱지따기 무용담을 털어놓았으나, 딱지 따먹기 유행은 이미 지난지 오래. 요즘 누가 딱지를 모으는가. 어머니는 먹던 수박을 아버지에게 부메랑처럼 날렸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각도와 힘의 방향, 손목 스냅, 속도까지. 이 밖에도 크리스마스날 번쩍이는 줄전구를 온 집안에 휘감았다가 어머니에게 혼쭐이 났으며, 취중상태에서 12인용 승합차를 덜컥 계약하고 온 적도 있다. 너무 커서 우리집 앞에 못 댄다.

 

 

 

 

 

 

4. 식당밥을 먹는다

 

 

아버지가 본인을 '하숙생'이라 표현한 것은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사진은 우리집 밥솥이다. 우리집은 쌀 소비량이 많은 편인데, 남동생이 한 끼에 밥을 서너공기 먹는다고 알고 있다. 늘 밥솥 두 개에 밥을 가득하다보면, 밥이 오래되어서 버릴때가 많다. 어느날 어머니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문득 '유레카'를 외쳤고, 집에서 밥을 먹을 땐 식당처럼 '공기밥 추가'를 외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 무렵부터 도입된 시스템이니 이미 십오년 가까이 되었겠다.   

 

 

 

 

5. 과일은 나만 먹는다

 

 

이건 뭐. 장남 밥 그릇에만 계란 후라이 깔아주는 구시대도 아닌데 희한하게 우리집 과일은 아무도 손을 안대고 나만 먹는다. 특히 비싸고 좋은 과일일수록, 내 손의 지문만 인식하는 최첨단 지문인식기가 부착되어있다.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는 과일들은 나의 손길과 함께 세상으로 나온다. 타지사는 딸내미 생각에 아껴둔거라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드는데, 정말 과일을 안좋아하시는건지 종종 집에 가보면 과일들이 썩어서 굴러다니고 있다. 여기는 사과, 여기는 배. 굴렁굴렁. 그 장면을 목도할때마다 이럴꺼면 나를 달라고 자취생은 눈물을 흘리고. 

 

 

어렸을 때 나는 스스로를 남자라고 규정짓고, 열심히 공부하고 눈물 따윈 보이지 않는 성장기를 보냈다. 그 덕분에 늘 집에서 장남 대접을 받았고. 한살터울의 동생은 이상하게 남자 특유의 무엇이 결여된 듯 보였는데, 형 노릇하는 나를 이겨먹어야겠다는 남자 특유의 경쟁심도 없었다. 내가 과도한 남성성으로 무장한 이상한 누나였던 것처럼. 아무튼 부모님이 만족할만한 실적을 갖다주고 이득을 취해온 나로써는 모든 좋은 것이 나에게 오는 것이 마땅했고, 차마 2인자는 신경쓸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좀 크고나서야 동생은 '우리집은 성 역차별'이라며 볼멘 소리를 했으며, 대학을 다닐 무렵에는 유학을 보내달라며 징징거리다가 '누나만 좋은거 해주고!' 라고 끝내 울먹였다. 나는 즉시 '너의 한 학기 등록금은 내가 다닌 학교의 네 배이며, 나의 유학은 부모의 돈이 아닌 학교 지원으로 갔다. 열심히 살지 그랬냐' 고 모질게 반박해줬다. 동생이 아직까지 과일을 입에 안대는 이유도 그런걸려나.  

 

 

종족 여러분. 같이 과일 먹어요. 저 장남 싫어요. (졸업 후 행보를 보아 진즉에 자격박탈이지만.)

 

 

 

 

 

 

 

이 밖에도 유난히 그림에 소질이 있다든가, 필기구에 집착한다든가- 한명당 백자루 씩은 갖고있다- 등의 여러 특징이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_')()()() > 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총량의 법칙 : 읽기와 쓰기에 관하여  (0) 2015.06.21
guitar  (0) 2015.06.20
우주의 좌표  (0) 2015.06.14
존슨 효과 (부제 : 친구야, 이빨은 괜찮은거니)  (0) 2015.06.13
오늘이 13일이 아닐텐데  (0) 2015.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