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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6월 25일

 

간밤에 벌레가 나왔다. 여자 둘이 두려움에 떨며 수긍했다. "꼭 결혼하자!"

 

 

 

 

새벽. 반도 못 뜬 눈으로 누워서 누군가의 글을 읽다가 '죽이네' 라는 한마디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죽이네. 진짜. 잠도 못 깨고 읽었는데도 좋네. 내 글도 누군가한테는 이 정도일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인다. 잠을 덜 깬 채로 찾아서 읽고는 아직 반쯤 수면 상태인 몸에서 기어이 '죽이네' 한 마디가 나오는거지. 절반 읽은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인정욕구를 포기하면 세상 모든게 편해진다고 거듭거듭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데도, 누군가에게 '잘 쓰네요. 원래 나 칭찬 안하는데. 잘 쓰네' 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야단스레 쏟아지는 기분이라 어쩔 도리가 없겠다. 

 

 

피곤한 몸을 싣고 한 시간 여를 달려 귀가. 씻고 굽은 새우등을 하고 모니터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매일 뭔가를 적어나가려고 악착을 떨고 있다. 피곤함이 극에 달해, 뒤통수에 심장이 또 하나 있는 것처럼 뒤통수가 뜨겁게 펄떡거린다. 그래도 뭔가를 쓰려고 앉는다. 머리가 못 쓰는 날에는 손가락이 대신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와중에 물꼬가 트여 준비하고 있는 기사에 대한 그림을 오래도록 짰다. 야근은 회사에서 해야지 이쁨도 좀 받을텐데.

 

 

조용히 쓰고 싶다, 라는 열망을 더는 참을 수 없을만큼 함께 사는 친구는 하루종일 뭔가를 조잘거린다. 버튼만 누르면 외로움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기계같다는 생각을 한다. 말꼬리를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세차고 사납게 나를 향해 비집고 들어온다. 내가 라디오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고 싶었으나 상처될까 입을 아꼈다. 나는 조용히 쓰고 싶다. 하루를 바쁘게 소화하고 손에 쥘 수 있는 얼마간의 시간. 친구를 좋아하지만 쉼없이 말을 하는 누군가의 하루에 귀 기울일 마음의 여분도, 여력도 없다. 조용히 쓰는 시간이야말로 나의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아닌가. 

 

 

오늘도 자정을 넘겨 쉴새없이 조잘대는 친구의 라디오가 꺼지고야 겨우 뭔가를 쓸 틈이 생겼다. 갑자기 벌레를 잡느라 여자 둘이서 야단법석을 떨어댔고, 그 사이에 써야겠다 마음 먹었던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휘발되고 짜증만 뚜렷하게 남는다. 궁서체로 짜 증 .

 

 

나는 쓸 때는 온 마음과 시간을 다 바쳐서 쓴다. 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고 절로 그리 된다. 어제 서민 교수님께 책을 잘 받아보았다고 감사의 답신을 짧게 보냈더니 '님처럼 책 많이 읽고 글 잘 쓰시면 어디서나 중요한 역할 하실 거예요' 라는 대답이 돌아와서 뭉클한 마음이 되었다.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다. 약간의 안면도 없지만, 멀리에서 나의 글을 조용히 탐독해주는 고요한 애독자께도 언제나 깊고 깊은 감사를.

 

 

 

* 죽이네 와 살아있네 중에 뭐가 더 근사한걸까. 문득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