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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체주머니

삼색연근밥 : 당신을 생각합니다 △ 재피 매주 일요일마다 스님께 요리를 배운다.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메뉴만 몇 가지 골라 한 달에 두어번 배우던 것이, 이번 달엔 메뉴가 싹 다 마음에 들어 등록신청을 했다. 푸르름이 농익는 계절이라 그런지 스님이 알려주시는 메뉴에도 푸릇한 향기가 뚝뚝 묻어난다. 게다가 요리와는 별개로 알려주시는 산사의 꽃소식은 계절을 도통 잊고사는 도시 바보에게는 여느 소식보다 귀하다. / 지금 산에는 아카시아가 활짝 피었어요. 이리와서 향 좀 맡아보세요./ 재피는 지금 아니면 떫어져서 먹기가 어려워요. 맛이 좋지요? 어제 배운 메뉴는 삼색연근밥. 연근을 가로로 뚝뚝 자른 뒤 구멍 안에 찹쌀을 가득 넣어 쪄내는 요리다. 연근 자체에는 향이 없기 때문에 찜통에 넣기 전 연잎으로 연근을 한번 감싸주어 밥과 연근에 향이 .. 더보기
2018년 5월 11일 : 생강밀크티 . 맑은 낯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오월. 하늘이 잔뜩 흐리고 무거운 품이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아서 집으로 총총. 달고 따뜻하고 향긋한 것이 먹고 싶어서 두유를 따끈하게 데운 뒤, 직접 만든 생강청과 계피 가루를 듬뿍 넣어주었다. 카페에서 팔면 '진저시나몬소이라떼' 쯤 되려나. 한모금 마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열 잔 마셔야지. 더보기
2018년 5월 9일 하늘빛이 기특한 요즘은 집까지 천천히 걷는다. 하염없이 바라는 사람에서 비로소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 이 계절이 내게 이만큼씩이나 주는구나. 더보기
내 인생의 눈동자 '내가 내 인생의 눈동자' 끄적끄적 노트에 쓰여있는 말.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내가 내 인생의 능동자' 라는 말을 잘못 읽었다. 누가 떠밀어서 회사를 들어간 것도 아닌데 누가 떠밀어서 불행한 것도 아닌데 자꾸만 나도 모르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내 모습에 대한 경계로 어제 적어둔 말 '내가 내 인생의 능동자' 인데 오늘 문득 '내가 내 인생의 눈동자' 라는 말로 읽히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게 된다. 그래, 내가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눈동자. 더보기
행복 밤늦도록 행복이 뭘까에 대해서 오래 고민했다. 요즘 물 속에서 숨을 오래도록 참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곤란한데, 왜 그럴까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나는 많이 변했구나. 더보기
2018년 4월 24일 오늘 (여전히 붐비는) 지하철에서 목격한 사람들. 1. 창문을 깨려고 발버둥친 남자. 몇 차례나 창문에 몸을 부딪혀 꽝꽝대는 바람에 주위의 몇 사람이 흠칫 놀라 물러났으나, 곧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내리는 정류장이어서 그 남자는 사람들 틈에 묻혔다. 유리창에 자꾸만 몸을 부딪치는 참새같았다. 참새치곤 흉악했지만. 2. 쉿-쉿 뱀소리를 내는 60대 중반의 할머니. 처음엔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곧 내 맞은편의 할머니가 내는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그녀는 중국어 공부중. 찌아요. 3. 계단에서 쓰러진 내 또래의 여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