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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매일의 얌,채식

삼색연근밥 : 당신을 생각합니다

△ 재피 


매주 일요일마다 스님께 요리를 배운다.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메뉴만 몇 가지 골라 한 달에 두어번 배우던 것이, 이번 달엔 메뉴가 싹 다 마음에 들어 등록신청을 했다. 푸르름이 농익는 계절이라 그런지 스님이 알려주시는 메뉴에도 푸릇한 향기가 뚝뚝 묻어난다. 게다가 요리와는 별개로 알려주시는 산사의 꽃소식은 계절을 도통 잊고사는 도시 바보에게는 여느 소식보다 귀하다. 

/ 지금 산에는 아카시아가 활짝 피었어요. 이리와서 향 좀 맡아보세요.

/ 재피는 지금 아니면 떫어져서 먹기가 어려워요. 맛이 좋지요? 


어제 배운 메뉴는 삼색연근밥. 연근을 가로로 뚝뚝 자른 뒤 구멍 안에 찹쌀을 가득 넣어 쪄내는 요리다. 연근 자체에는 향이 없기 때문에 찜통에 넣기 전 연잎으로 연근을 한번 감싸주어 밥과 연근에 향이 고루 배게 하는 것이 포인트. 메뉴에는 원래 없었지만 지금 재피가 딱 먹기 좋은 철이라며, 스님이 재피 잎으로 간장을 만들어 곁들여 먹으라고 팁을 알려주셨다. 워낙에 고수나 월계수 잎 향이 독한 풀을 무척이나 좋아하기에, 재피는 처음 보고 듣는 풀인데도 향을 맡자마자 금세 좋아졌다. 열매는 혀가 아리니 먹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 말을 들을쏘냐. 몇 개를 연거푸 입에 넣었다가 결국 눈물을 찔끔찔끔 쏟고 말았다.


조리과정이 길고 복잡한 요리는 정해진 시간에 쫓기다가 부랴부랴 미완의 요리를 한 젓가락 뜨는 것으로 마무리하는데, 삼색연근밥은 그저 묵직하게 40분의 시간을 쪄내는 것이라 기다리는 동안 설거지도 하고 같은 조원들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기에 좋다. 매주 얼굴을 뵙는 멋있는 할아버지 한 분과 이번에 같은 조가 되었는데 '장모님이 연잎밥을 무척 좋아하셔서 그러니 좀 가져가도 될까요?' 하고 양해를 구하신다. 조의 큰 언니가 흔쾌히 '그러세요' 하고는 김이 펄펄 끓는 냄비에서 연잎으로 감싸진 뜨끈한 연근을 꺼내어 동강동강 썰어 통에 담아드렸다. 우리 모두 '아주 그냥 신사셔' 하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삼색연근밥은 큰 맛이 느껴지진 않는다.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색채도 없고, 무릎을 탁 치게하는 강렬한 맛도 없다. '삼색'이라고 찹쌀에 치자며 녹차, 강황물을 곱게 들였지만 찌면서 색이 다 사라져버린다. (정확하진 않지만 연근의 어떤 성분 때문이라고 우리 조의 '신사'분이 알려주셨다.) 그저 연근을 입 안에 넣고 천천히 씹으면 입 안 가득 퍼지는 은근한 연잎향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이 계절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귀한 재피를 곁들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 


누가 당신에게 연근밥을 대접한다면, 연근 구멍에 일일이 젓가락으로 찹쌀을 박아넣으며 당신을 생각한 그 정성을 오래 기억하자. 지금 이 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재피같은 '시절인연'임을 다시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