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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8년 3월 4일 : 봄비 비오는 아침 공기의 슴슴한 냄새. 습기를 머금은 공기의 틈 사이로 갓 구운 식빵냄새가 스민다. 아, 너무 좋구나. 누군가 간밤에 길바닥에 부쳐놓은 전을 또 마주하지만, 그래도 나의 좋은 기분을 망칠 순 없지. 어제 급작스레 봄이 되었다. 발목을 덮는 두껍고 긴 패딩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코트와 힐을 신고 나섰다. / 황당해. 하루만에 날씨가 이렇게 되냐. 3월의 초입에 만난 친구들은 갑자기 찾아온 봄에 황당함을 표하면서도 기분좋은 표정. 1년 중 봄을 가장 좋아하는 나는, 그래서 언제까지고 봄만 계속되는 나라에서 살고싶은 나는, 드디어 찾아온 봄을 믿기 힘들면서도 기분이 좋다. 힐을 신고도 밤 열한시까지 여기저기를 부지런히도 걸어다닐 정도로. 봄, 너를 기다렸어! 더보기
2018년 3월 3일이 되기 1분전 : 씨리얼 최근 의미있게 본 두 편의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모두 씨리얼을 먹는다. 의 주인공은 씨리얼로 아침을 열고, 의 주인공은 어느 날의 저녁, 이웃의 집에서 씨리얼을 먹으며 함께 TV를 본다. 씨리얼은 유독 손이 가지 않아서 여태 살아오는 동안 기껏해야 두어번 먹어본 게 다인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며칠간 줄곧 씨리얼 생각이 간절했다. 한 통 사볼까. 일전에 씨리얼을 할인 판매하기에 10통 가까이를 사두고는 - 너무 많이 사긴했지 - '1년이면 다 먹겠지' 했지만 딱 한 번 먹고는 그 뒤 먹지 않았던 일이 있기에 애써 참는다. 끽해야 한 번 먹고 버릴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 아버지의 부재중 전화에는 왠지 응답하지 않게된다. 나에게 아버지는 안개 가득 낀 어스레한 숲길, 한낮에 오르는 가파른 바위산. 가도.. 더보기
흉터 지독한 실패라고 여겨 떠올리는 것조차 끔찍했던 시기가 있다. 오늘 문득 돌아보니, 그 때의 나는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을 다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더라. 흉터라고 여겼던 흔적이 보석처럼 반짝 빛나고 있어서, 과거로부터 오늘을 위로받는 아침. 자, 3월의 시작이다. 더보기
2018년 2월 24일 : 고구마와 파도 1. 토요일 아침. 고구마 익기를 기다리며 이불 속에 파묻혀 책을 읽는다.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 계획인데, 설익지도 무르익지도 않은 맞춤한 정도를 지켜야 맛있는 말랭이를 만들 수 있다. 2. 요즘은 오히려 삶에 대해 덜 생각한다. 삶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파도처럼 끊이지 않고 내게 불어올테니까. 부드럽게 때로는 맹렬하게. 나는 언제까지고 모래밭에 앉아 파도를 바라보는 방관자일 수 없으니,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툭툭털고 일어나 오늘의 파도를 타러간다. 삶이란 그저 파도를 타는 것. 파도 위에서 그루브를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굿. 병상에 누워 무말랭이처럼 쪼그라든 할머니를 보면서 엄마는 울었고, 나는 할머니보다는 그런 엄마 모습에 눈물이 났지만 '삶으로 삶을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 스스로의 .. 더보기
2018년 2월 23일 : 눈 △ 가로등에 업혔다가 나무에 걸린 해. 아마 자정께였나. 우르르쾅쾅, 창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 벌떡 일어났다. 전쟁이라도 난건가? 밖에 나가봐도 되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몇 차례 계속되는 총성 - 잠에서 덜 깬 상태라 총성이라고 판단- 에 오들오들 떨다가, 늦게까지 안 자는 이웃에게 카톡을 해보니 천둥이라고 했다. 눈오는 가운데 천둥이 계속 친다고. 문을 빼꼼 열고 내다보면 제법 살뜰한 구경이었겠지마는, 그때는 왠지 무섭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천장을 보며 다시 멀뚱멀뚱 누웠다가 불을 켜고 그냥 잠들어버렸다. 어제 눈이 많이 왔으렸다, 아침에 현관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한결 따뜻해진 날씨 덕분인지 눈이 많이 녹았다. 쌓인 눈의 두께에 따라 출근 시간을 조정해야하니 얕은 눈에 안심했달까. 눈이 .. 더보기
생명 인간은 살아있는 가운데 죽어있기도 하고, 죽어있는 가운데 살아있기도 하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