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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가슴 : 에 밑줄하나

여덟. 여기, 찐하게 한잔 부탁해요

어렸을 땐 참 그렇게 뭐든지 컸고 진했다. 아. 이정도의 강렬한 임팩트로 나를 때리는 문장은 참으로 오랜만이라 내 두눈은 한참동안 이 문장에 붙박혀 있었다. 그래, 어렸을 땐 참 그렇게 뭐든지 컸고 진했다.

빛의 속도로 온몸이 문장의 진동에 강렬하게 반응하면서도 내 머리는 특유의 버릇대로 '왜'를 생각해내려 애쓴다. 왜? 왜 어렸을땐 뭐든지 크고 뭐든지 그렇게 진했을까. 퍼뜩 생각나는 하나는 베버의 법칙이다. 과학책에 적혀있던거 있잖아. 역치라는게 있어서 맨첨에 주먹으로 한대맞으면 무지 아픈데(무지 대신 졸라 라는 말을 너무쓰고싶지만 참아야지) 두번째 맞을때는 처음 맞을때만큼 안 아프고. 그런거. (다들 아시리라 믿기에 구린 설명으로 슬쩍 넘긴다.) 세상에서 젤 아픈게 맞은데 또 맞는건데, 이런걸 생각하면 과연 베버의 법칙이라는게 인간의 피부에도 통용되는가 싶지만 이건 일단 넘어가자.

아무튼 어릴때는 닿는 세상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것이 신기했고 일상의 대부분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울수 있었다. 엄마 화장대에 놓인 스킨병을 마구 흔들어 거품이 뽀글거리는걸 바라보며 환상에 젖기도 했고, 무섬증에 얼굴 끝까지 덮어쓴 이불에 삭삭 내 속눈썹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예수님 발자국 소리'로 착각하곤 하기도 했다.
슈퍼에 파는 100원짜리 빨간사탕을 아로미 사탕으로 이름붙이고는, 동생과 함께 뻔질나게 슈퍼를 들락거리며 입안에 단내를 폴폴 풍기던 나이. 커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보고 들어 알게되니 세상에 대한 역치가 점점 높아진 탓인지 웬만해선 시큰둥하다. 

나의 세상을 옅게 만든 또 다른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 순수 이지 않을까. 어린아이들은 계산을 안한다. 계산이라 해봤자 엄마 손바닥위의 숫자들을 누르는것에 지나지 않잖은가. 어른이 되니 계산을 많이한다. 안하려고 해도 이것저것 머릿속으로 숫자 놀음을 한다. 시간, 돈, 나이. 등수, 연식年式. 숫자, 숫자, 숫자. 인간의 암산능력을 극도로 높여놓은 가장 큰 원인도 넓은 세상이겠지.

하! 어쨌든 이렇게 주절거려보지만 구구절절한 이유는 다 치워버리고 그냥 찰나에 온몸으로 느낀 진동대로 쓰자.나는 어른이 되었고, 다시는 어릴때처럼 '그렇게 크고 진하게' 느낄 수 없다는 걸 안다. 내가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걸 온몸으로 그냥 알기 때문에, 나는 그토록 강한 진동을 느꼈던 거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 그래서 조금은 슬프다는 거. 그게 다다. 

신을 만나게 된다면, 그래서 내 인생의 차茶 한잔을 부탁할 수 있다면 꼭 이렇게 말하리라.
'여기, 찐하게 한잔 부탁해요' 라고.
찐한 차한잔을 마시면서, 난 분명 짠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