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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1월 7일 : 새해 일주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황색과 보라색.

옷은 보라색이 압도적으로 많고, 물건은 주황색이 많도다.

(보라색이 잘 어울리면 미인이라던데 키키키)

 

 

 

 

 

1. 그림자만 보아도

 

 

 

자주 맞이하는 백수의 시간이지만, 프리랜서만큼은 아니라 늘 이 시기면 두렵고 고달픈 마음이 든다. 바빠 때로는 점심밥도 거를만큼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늘 밤 열시 열한시를 넘기기 일쑤였는데, 참치캔 기름 빼듯 일상에서 바쁨을 쪽 빼고나면 아, 이토록 황망한 여유만이 남는 것이다. 이제 뭐하지?

 

우스운 사실은 작년 이맘때도 백수였는데 그때와 지금의 몸무게가 10키로 가량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끄악!) 작년엔 정말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식에 - 보자, 쉴새없이 휴가도 제대로 못가고 꼬박 4.5년을 일했으니 - 기쁨에 겨워 2주동안은 정말로 잠만 잤고, 누워서 먹었고, 이마트 아저씨가 내 이름을 외울만큼 많은 과자를 주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먹었나 싶은데 새벽 네 시에 문득 스팸을 퍼먹기도 하고, 누워서 몽쉘 스무개 쯤은 우습게 먹어치웠... 좋아하는걸 아주 많이 먹을 수 있는 재능을 타고 났다. 앉은 자리에서 하드 서른개를 먹은 적도 있으니. (아직도 이해 못하는 말은 '달아서 못 먹겠다'와 '배불러서 못 먹겠다')

 

아무튼 작년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누워 먹지는 않으려 하는 편인데, 늦잠은 조금씩 자게 되는건 어쩔 수 없다. 하긴 소화해야 할 아무 일정도 없으면서 바쁜 척 스스로를 속이는 건 쉽지 않은 노릇이니까. 바뀐 패턴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몸이기도 하고. 그래서 늦잠을 자게 되는데 평소보다 두어시간을 더 자게 되어 아침 8시 반 정도 일어난다. 그게 무슨 늦잠이냐고 항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말로 타고난 아침형, 아니 새벽형 인간이라 이쯤되면 정말 많이 자는 편. 부스스 띵띵 부은 얼굴로 시계를 들여다보고 8시를 확인하면 나도 모르게 나의 게으름을 탓하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싶으면서도.

 

오늘은 오전에 잠깐 일을 보고 와서 이력서를 쓰려고 책상 앞에 딱 앉았는데, 마침 고맙게 아는 선생님 한 분이 연락이 와서 이런저런 제안을 하시는 바람에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네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케팅과 원고 일을 좀 도와드리기로 햇는데 이야기를 끝내고 다시 각 잡고 앉아서 쓰려니 답답하기도 하고, 닫아둔 창으로 해가 너울대는 빛깔이 아름다와서 불쑥 일어나 동네 까페로 갔다. 좀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힘든 소리 안하는 내가, 문득 며칠전 저녁에 집으로 가면서 친구에게 전화를 해 우는 소리를 했더니 쪼꼬렛 먹고 힘내라며 친구가 쿠폰을 보내줬었단 말이지. 음하하. 좋은 자리가 없어서 기운을 막 보냈더니 곧 한명이 나의 부르심에 응답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벽 아주 구석에 몸을 푹 기대고 자리를 잡고 정리할 내용들도 좀 정리하고 보고 싶은 책에도 형광펜 짝짝 그어가면서 - 두 권 있어서 그렇게 했다. 아니면 난리남. 소중한 책님- 열심히 봤다. 드문드문 날아오는 카톡 답장도 해주고. 오늘은 오랜만에 연락올 사람들이 많은 하루인지 사내 아이 낳아 키우는 친구 하나가 연락이 왔는데, 왠열. 딸내미가 올 4월에 나온단다. 둘째 가진 줄도 몰랐는데 거참. 나는 가만히 고여 있는 것만 같은데 주변은 자꾸자꾸 변하는구나 싶어서 놀랍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 공기가 쌔해져서 주변을 돌아보니, 역시 이 냉랭한 기류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흐르는 것. 작은 테이블 하나를 마주하고 서로 머리를 감싸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버럭 큰 소리로 말하다가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늘 느끼는데, 나는 주변 사람에게 관심도 없고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 편인데 유독 남자와 여자의 트러블은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저 멀리서 그림자만 봐도 알겠다. 회사 건물에서 멀찌감치 내려다 보이는 개미 만한 커플의 싸움도 알아챌 수 있겠고,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버티고 서 있는 커플의 기류도 직감할 수 있다. 이 냉랭한 공기 속에서 나도 더이상 무엇을 할 수가 없어 자리를 털고 나오는데, 쟁반을 갖다 놓으면서 다시금 힐끗보니 정말 심각하긴 심각한가보다.

 

나도 언젠가는 그림자에서 단내가 풀풀 날만큼 연애에 빠졌던 때가 있었지. 그림자만 보아도.

 

 

 

2. 사랑의 메신저

 

 

 

 

 

어머니가 지금 캄보디아에 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일주일 여정으로 다녀오시게 됐는데 늘 이럴때마다 내가 피곤하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아버지 때문인데, 어머니가 나에게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만 사진을 와다다다 보내면 나는 그 사진을 다시 문자로 하나하나 아버지에게 와다다다 보내줘야 한다. 이걸 하루 사이에 몇 번이나, 며칠을 반복하고 있다보면 사실 좀 피곤하다. 어머니는 그 와중에 사진을 아버지에게 보냈느냐며 재차 물어보고, 아버지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사진에 대한 감상평을 실시간으로 말한다. 다시 그러면 나는 아버지의 감상평에 적당한 별점을 매겨주며 응수 해주다가 그것을 갈무리해서 엄마에게 까톡으로 찍어 보내고, 그러면 엄마는 그 감상평에 대한 답례로 더 많은 사진을 와다다다 보내며 아버지에게 보냈느냐고 재차 확인하는 식인데...아 이럴바엔 그냥 아빠한테 스마트폰을 해주라고!

 

아빠에게 몇 번이나 간곡하게 스마트폰을 사라고, 사라고 해도 아빠는 별 필요가 없다고 몇 년째 버틴다. 아부지, 내가 필요해서 그래요 내가. 내가 힘들어서 그래요!!!! 엄마의 부재로 인한 적막함을 자꾸 시도때도 없이 하나뿐인 딸내미로 메워보려는 아버지의 얕은 수도 나에게 먹히지 않는다. 나는 그럴만한 위인이 아니기 때문이지. 자꾸 실시간으로 전화 걸어서 '나는 반찬 없어도 밥 잘 먹는다'고 자랑을 하시는데, 내 요즘 상황과 좁은 마음 자리 때문에 그 농을 일일이 받을 수가 없다. 불효자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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