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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12월 28일 : 다시, 백수

 

 

 

 

 

자발적 퇴사인지 비자발적 퇴사인지 아직도 알 길이 없으나, 밀린 월급 3개월치에 대한 임금체불각서의 손을 잡고 퇴사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다들 짐을 빼느라 왔다갔다하는데, 나는 그 속에서 홀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퇴사에 대한 감상을 끄적였다. 뭐든 열심히 쓰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

 

 

새벽까지 글을 썼다. 나의 글쓰기는 진일보하고 있다. 어쨌든 계속해서 써야할 동력이 생겼으니까. 브런치에 글을 올리자마자 메인에 덜컥 걸리는 나름의 영광(?)을 얻게 되어서, 순식간에 이름모를 백명의 독자가 생겼고 나는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간간이 옛날 글을 퍼올려보기도 하고 사랑 따윈 어렵다고 찌질대기도 했으나 다행히 아직까지 백명의 무명씨들은 나를 떠나지 않고 곁을 지켜주고 있다. (감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새벽에 올린 글이 몇 사람들에게 공유가 되며 이리저리 떠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기분이 좀 묘했달까. 누군가 나의 글을 좋아해서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내 글을 퍼다 올린 것 아닌가. 무엇을 써야할지, 무엇을 꾸준히 써야할지 아직은 막막하지만 막막하게 꾸준히 쓰고 싶다.

 

 

*

 

 

그래서 백수 첫날.

 

일상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 일찍 집을 나왔다. 타고난 아침형 인간이라 일찍 일어나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나오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오전에 간단한 일정을 소화하고 점심 무렵 집으로 돌아가 방에 우뚝 섰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할까. 다달이 월세를 꼬박꼬박 내야하고, 하루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꾸려나가야하는 자취생에게 월급이 삼개월이나 밀렸다는 건 좀 가혹한 처사다. 하필이면 겨울이기도 하고 난 또 물가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다는 서울, 그 중에서도 값비싼 동네에 살고 있으니까. 방에 우뚝 서 있는데 번역가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니의 이런저런 인생고민에서 시작해 혁오 찬양으로 끝을 맺은 우리의 통화는 제법 길어져 한 시간을 우습게 돌파했다. 한참동안의 전화를 끊고 언니가 말한 어느 누군가의 책을 찾아봤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려다 다행히 동네에서 멀지 않은 서점에 책이 있었다. 언니는 늘 나에게 유의미한 사람이다. 책을 찾아보고 곧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안도의 기분이 들자, 문득 오랜만에 배달음식이나 시켜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킨 아니면 피자가 먹고 싶었다. 백수 첫날 기념으로. 내일은 둘째날 기념으로, 그 내일은 셋째날 기념으로, 그 내일은, 또 그 내일은. 나는 내게 주어진 일상이 없으면 내가 얼마나 하염없이 무너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낮밤이 바뀌는건 기본이고 쉴새없이 먹어대며 온종일 누워서 이불을 둘둘말고 꼼짝없이 나오지 않는다. 이번엔 그 짓을 막아볼 요량으로 무조건 낮시간에 사무실처럼 앉아 있어야지, 싶은데 이게 또 사실 인간적이진 않은거라 금세 일을 또 구해야하고 또 이런저런 업무에 시달릴텐데 누울 수 있을 때 눕는 것이 남는 장사 아니겠으며, 진정 나를 위한 삶의 자세 아니겠는가. 아. 눕고 싶다. 누워서 피자 한 판을 왁왁 물어뜯다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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