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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8월 17일 : 차선의 마법사

 

 

△ 찍지마 thㅔ요!

(더 격렬하게 못댔었는데 촬영을 저지당했다.

저 각도에선 그래도 괜찮아보이지만 사실 되게 심각한 주차였다.)

 

 

 

 

월요일. 오늘은 왠지 허름하게 입고 가고 싶어서 - 나중에 현진에게 그 말을 했더니 '아니 허름하게 입고 싶은 날도 있어?' 하며 놀라 웃는다 - 옷을 깔끔하게 입었다가 다 벗어놓고 허름한 바지에 허름한 민소매티에 운동화를 신고 출근했다. 바지도 남색, 민소매도 남색, 운동화도 남색이다. 허름허름. 허름한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팀장님이 살며시 다가와 '다시 써야겠다^^' 상냥한 피드백을 주셨다. 역시 동화는 안되는거군. 시간이 없다. 없드아! 종호씨 출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진찍는 종호씨를 끌고 취재를 하러 나왔다. 역시 허름하게 입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어. 출근하자마자 퇴근이라니. (퇴근이었으면 좋겠지만)

 

 

늘 내가 잡는 취재날은 하늘이 적당히 흐리고 시원해서 종호씨가 나중엔 기겁을 하며 '기상청에 지원해봐라. 흐린날은 기가 막히게 잘 맞춘다고 얘기하면서' 라고 감탄을 했었는데, 심지어 난 인정받은 미스 반 날씨였는데. 오늘은 내가 잡은 날이 아니었다고. 어제 미친듯이 퍼붓던 비만큼이나 햇살이 퍼붓는다. 그리고 오늘은 종호씨가 첫 운전을 하는 날이다. 으하하하하. 오랜만에 성호를 그었다. 아멘.

 

 

급브레이크에 핸들 홱 돌리기에 '아이고 이 오빠 안되겠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차선 변경은 왜 그리 자주하는거냐고 물으니, 그때마다 이유가 있었다. 아 이게 우회전 차선인데 제가 막고 있었어요. 어 여기서는 좌회전이 안되는건가? 비보호니까 하하하! '이거 카트라이더 아니야!!!' '왜 종호씨 혼자서 이 도로위에서 도는거야? 그래도 되는거야?' 불안하다. 불안하다!

 

 

다시 인터뷰를 짜야한다는 피로감, 전해져오는 초보운전자의 불안감, 작렬하는 태양의 쓰리콤보가 나를 어딘가로 내몬다. 게다가 어린 학생들 인터뷰가 필요했는데 중고등학생들은 오늘 개학해서 오전 수업만 하고 사라져버렸고 초등학생들은 일주일 뒤에나 개학을 한다는 사실. 오전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몇을 붙들고 인터뷰를 하는데, 지나가던 선생님이 소속을 묻더니 "왜 인터뷰를 학교 앞에서 해요?" 라고 묻는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눈을 땡그랗게 뜨고 "그럼 학생들 인터뷰를 학교에서 하지 어디서 합니까?" 라고 되받아쳤다. 아무말도 못하더니 몇번이나 뒤를 흘끔거리며 내가 맘에 안든다는 눈길을 쏴대며 사라진다. 나도 그쪽 맘에 안들거든요. 그럼 이 학생들 데리고 어디라도 가야되냐? 내가 누군줄 알고 애들이 따라와. 참나.

 

 

애들이 실종해버린 도시같다. 뜨거운 태양아래 애들만 찾아서 이리저리 차를 몰아봤지만 애들이 정말로 다 사라지고 없었다. 학원 근처에 가보려 해도 꽤 바빠보여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일강아 보고싶다. 일강이 친구들이 그렇게 나를 에워싸고 괴롭혔었는데. 그 한무리만 있었어도 한자리에서 인터뷰 열개는 따겠네. 학원간다는 꼬맹이 하나를 겨우 쫓아가서 제발 오분만 시간을 내주십사, 간청을 거듭하여 인터뷰를 따고나니 맥이 쭉 빠져버렸다. 원래 차에서 잠을 못자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파묻고 잠이 들었다. 종호씨는 공황이 왔는지 땀을 흘리며 운전대를 잡고 멍한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사 다 왔다기에 그렇구나 싶었는데 반대 방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종호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