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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6월 14일 : 유월의 일요일 오후

 

시간의 풍경

 

 

 

 

일요일 오후. 오후라는 낱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짝꿍이 일요일이라고 끄적여둔 날이 언제였더라. 친구와 친구의 남자친구와 함께 한 공간에서 사흘을 보내고 있다. 새로산 선풍기 이름이 '쿨 가이' 더라고. 낄낄. 냉장고를 털어 무어라도 해주려 했으나 재료가 없어 <냉장고를 부탁해> 반셰프 편은 다음 기회에. 배달의 민족답게 엊저녁의 보쌈에 이어 또 한번의 배달음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친구는 느른한 단잠에 빠져있고, 나는 이제 슬슬 내 공간을 마련해야하지 않을까 싶어 두어군데 전화를 넣어보았다.  

 

 

어제는 '우주의 좌표'라는 글을 썼다. 뭔가를 쓰기에 실로 악독한 상황이었지만, 글을 쓰려면(?) 어떤 상황이든 견딜 줄 알아야 한다며 차분하고 진지하게 밀고 나가려 나름의 노력을 다했다. 한 문장인가 두 문장을 쓰고는 꽤 오랫동안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지만. (바로 옆에서 친구가 두 시간째 소리를 버럭버럭지르며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고, 듣기 싫어도 자꾸 단어들이 내 머릿속을 파고든다. 글의 흐름은 뚝뚝 끊기고.) 현재의 나는 그 무엇이든간에 둥둥 떠있는 상태다. 머물 곳이든, 다닐 곳이든, 몸이든 마음이든. 머물 곳과 다닐 곳을 중심축으로, 그 사이의 틈바구니에 나름의 무언가를 성실히 짜넣던 나의 생활도 5월과 6월 즈음에서 올 스톱되어있고.

 

 

요즘의 생활에서 썩 단단하고 성실하게 반복되는 것은 하루하루의 기록 정도. 심각한 글보다는 심각하게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몰래 생각하지만, 심각하지도 심각하게 좋지 않아도 괜찮으니 괘념치말고 그저 써내려가기로. 마음먹은 뒤로는 날날이 그저 써내려가고 있다. 이삿짐을 싸면서도 쓰고, 친구의 집에서도 쓰고, 또 다른 친구의 집에서도 쓰고, 일을 하는 짬짬이 쓰고. 짬이 되면 짬짬이 안써도 되겠지만.

 

 

어쨌든 이 달 안에는 모든 것에 뿌리를 내리려 한다. 내려야 하고. (뿌리 출동!) 그리고 기타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심장 가까이에 얼른 따뜻한 선율을 안고싶다. 온통 초록인 이 계절의 힘을 좀 빌려써야지.

 

 

 

(*) 담담한 유월의 초록. 행운을 빌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