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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6월 8일 : 잠시의 여의도 라이프

 

△ 요-이-도

 

 

 

다시 돌아온 한 주. 다시 돌아온 우주의 귀염둥이(푸훗). 꼭 이레 전, 장장 반년의 공백을 깨고 출근하는 심정은 병아리가 알을 깨는 그것과 조금은 닮은 구석이 있지 않을까나. 몸을 뉘이던 시각에 갑자기 몸을 일으키고, 아직 익숙치 않은 몇 개의 비밀번호 - 친구가 사는 건물의 입구, 친구의 집 현관, 사무실 현관 - 를 잃어버릴까 늘 염려하고, 버스 노선표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낯선 동네를 동동거리며 달려서 지하철을 타고, 누군가의 몸에 내 몸을 꾸역꾸역 포개는 정기적인 피로감과 불쾌감을 감내해야 하는 아침.

 

동동거리며 분주하던 지난주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오늘. 여덟시를 넘겨서도 여유있게 꼼지락거리는 나를 보고 친구가 '지금 늦은거 아니야?' 걱정을 해준다. 고맙다. 친구야. 그러나 난 이미 출근길의 대부가 되었단다. '괜찮아. 28분 급행만 잡으면 돼.' 씨익.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 근처에 도착한 시각은 16분. 달리면 20분에 오는 급행도 잡을 수 있겠다. 슬리퍼를 신고 열심히 뛴다. 그러고보니 지난주 오늘에는 8센티정도의 힐을 신었다. 20분 급행을 잡아타고 재빨리 반대편 문에 기대어 섰다. 여기서면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들이치는 인간 파도를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다. 문에 기대어 여유있게 책을 한 권 빼들었다. 난 이미 출근길의 대부니까. 캬.

 

 

*

 

 

마포의 작은 출판사에 다닐 무렵, 여의도로 업무 미팅을 왔었다. 이틀 안에 여러 미팅을 털어넣어야 했기 때문에 - 파주, 강남, 여의도, 충정로 - 스케줄도 빡빡하고, 회사에서도 일정을 쪼이는터라 별다른 여유를 낼 수 없었다. (그래요. 빵은 먹었어요. 애독자님.) 여의도에 2년이상을 다니면서도 여의도 공원이 바로 옆인 줄도 몰랐으니까. 작년 봄인가, 미팅이 펑크났었나 일찍 끝났었나 어쨌나. 여의도 공원으로 가서 꽃이 막 필 무렵의 이른 봄을 맞은 적이 있다. 혼자 봄을 만끽하다가 사진 찍어달라는 뉘앙스의 커플이 다가와서 재빨리 도망갔었고. 올해는 도망가려다가 걸렸지만,카메라 앞에서는 도망자의 마음을 가지고 겸허하게 살아가고 있다. 물론 외국인이나 혼자 다니는 분들은 가로 세로 돌려가며 참 열심히 찍어드린다. (커플 껒...)

 

다리 하나를 건너왔을 뿐인데, 온갖 좋은 건물은 죄다 몰려있는 듯 기깔나는 여의도의 빌딩 숲. 멀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차림의 사람들과 목에 걸린 사원증. 나의 부모가 기대하는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괜히 죄스러웠고 큰 빌딩앞에 서있는 작은 내가 더 작게 느껴지곤 했다. 나도 언젠가의 내 삶에 여의도를 가져볼 수 있을까? 애써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고.

 

 

*

 

 

△ 발걸음, 발걸음, 발걸음들.

 

 

 

차려입은 발걸음들이 곁을 스친다. 점심시간이 되면 우르르 식당가로 몰려가 작업복처럼 다들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뜨겁고 바쁜 뭔가를 삼킨다. 식사를 마치면 우르르 근처 까페로 몰려가 뜨겁고 바쁜 뭔가를 식히느라 분주하다. 그러다보면 업무 중 유일한 휴식시간인 점심시간 굿바이. 출근 첫날에는 함께 나가서 식사를 했지만, 연예인 이야기와 맵고 뜨거운 연기가 바쁘게 뒤엉킨 식사를 원치 않아 그 다음날부터는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오늘도 여전히 사람들은 뜨겁게 바쁘고, 바빠서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