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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6월 6일 : 쏠로몬 나빠요

 

 

△ 아. '아위 커피'랑 '할리스 커피'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갭이 존재하는 걸까.

 아위 커피를 찾아 얼마나 헤메었던가. 나도 미국 유학 가야하나.

 

 

 

솔로몬은 내 제주도 친구다. 올해초 어느날 밤,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다 아무 계획도 없이 갑자기 가방을 벌떡 싸 제주행 밤비행기를 타고 내 인생 첫 제주를 디뎠고, 솔로몬은 나의 첫 제주도 친구가 되었다. 맛있는 고기국수집도 데려가고,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오토바이를 태워준 것도 솔로몬이다. 솔로몬과 마주하고 호로록 국수를 먹으면서 앉아있으면, 주인 아저씨가 '너 얘랑 무슨 사이냐. 애가 얼굴이 흉악하게 생겼다. 조심해라.' 라는 코멘트를 서슴치 않았다. 솔로몬이 다 알아듣고 한국말로 대답하면 움찔거리는 아저씨 어깨를 보는 것도 꽤 재미가 쏠쏠했고.

 

첫 만남에 솔로몬의 아버지가 군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단박에 그려지는 그림은 뭐 그렇고 그런 그림이었다. 미군인 아버지가 한국에 주둔해있다가 한국 여인의 배에 아이를 만들었고, 주둔기간이 끝나 지네 나라로 내뺐겠지. 사람의 굳어진 생각이라는게 참 무서운게로구나. 솔로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미국에서 여러 자녀를 낳고 알콩달콩 잘 살고있는 평범하고 예쁜 부부였다.

 

아무튼 일주일 남짓 머물렀던 제주를 떠나며, 솔로몬에게 서울에 놀러오게되면 꼭 연락해! 라는 말을 남겼는데 진심이 아마 반쯤 섞여 있었을 것이다. 솔로몬이 참 고마운 것이, 제주에서 몇 번 보지도 않은 나에게 그 뒤로도 꼭 살갑게 먼저 연락을 해주곤 했다. 일은 구했니? 거기 날씨는 어때? 잘 지내니? 하고. 이번에 서울에 온다며 이미 한달도 전에 나에게 몇 번이나 말해두었기 때문에, 오늘 꼭 시간을 비워서라도 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제는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몇 시, 어디로 가겠다고 확실하게 해두기도 했었고.

 

그런데 이게 뭐냐. 나는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이태원을 두시간째 방황하는 것이냐. 솔로몬이 3시쯤에 끝난다던 누군가의 졸업식은 다섯시를 훌쩍 넘어 끝났고, 나는 김이 오를대로 올라있었다. 다섯시 넘어서 전화를 거의 열통 가까이 넣었는데 통화도 되지 않았고, 겨우 통화가 되었는데 한다는 말이 '어 미얀해. 쇼핑하느라 전화를 못 받았어!' 야!!!!!!!!!!!!!!!!!!!!!!!!!!!!!!!!!!!!!!!!!!!!!!!!!!!!!!!!!!!!!!!!!!!!!!!!!!!!!!!!!!!!!!!!!!!!!!!!!!!!!!!!!!!!!!!!!!!!!!!!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다. 그래. 합리적으로 화를 내자. 합리적으로. 미국애들은 합리적으로 얘기하는 걸 좋아해. 이러저러해서 화가 났다고, 시간순에 따라 너의 잘못을 지적한 뒤 수줍은 뻐킹 유 정도로 마무리를 하자 싶었다.

 

그런데 아위 커피에서 보기로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아위 커피가 보이지 않는다. 아위 커피? 다시 전화를 걸어 부르짖는 못찾겠다 꾀꼬리. (꾀꼴)

 

'4번출구에 아위커피라고? 안 보이는데!'

'오 노~. 4번출구에서 길을 건너면 올리브영이 있는데, 올리브영에서 길을 건너면 아위커피가...'

 

어 크로스 더 스트륏~ 얼뤼브영~ 어쩌구 저쩌구~ 어 크로스 더 스트륏~ 어서 와. 영어듣기 오랜만이지? 두리번 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할리스 커피가 보인다.

 

'You mean 할.리.스.커.피?'

'Yeah~ hollys coffee'

 

넌 아위. 난 할리스. 할리스도 못 알아듣는데 어떻게 이러저러해서 화가 났다고 설명하겠는가. 할리스 커피 앞에서 솔로몬을 보자 깊은 한숨이 나왔다.

 

'아이 앰... 낫 굿'

'와이?'

'어...'

 

솔로몬에게 합리적으로 화를 내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자리를 옮겨 함께 식사를 하러 갔으나 나는 대뜸 맥주부터 시키는 호기로움- 맥주 선주문이 나한테 얼마나 호기로움인지 아무도 몰라주긴 하지만- 을 보였다. 울컥 분이 나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더니 곧 취해서 기분이 좋아져버렸다. (원래의 계획은 술취해 화를 낼 계획이었다. 나를 화를 잘 못내는 인간이니까. 쩝.) 게다가 솔로몬이 미안했는지 양고기와 돼지고기 찹스테이크를 연신 썰어 접시에 올려주며, 어찌나 다정하게구는지 화를 낼 수가 없게 되었다.

 

에라. 1차에서 작은 맥주 한 병을 혼자 까고, 자리를 옮겨 다시 열심히 마시고 있는데 왠 외쿡인 남자무리가 다가와서는 티슈에 립스틱 자국을 좀 찍어달란다. 지들끼리 게임을 했다나 어쨌다나. 여기가 이태원이긴 이태원이구나. 테이블에 같이 앉아있던 여자애들은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티슈에 입술을 꾹 찍어주었고, 난 함부로 입술을 파는 여자가 아니므로 도도하게 앉아있었다. 잠시 뒤에 그 무리가 다시 와서 이번엔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기에 쭈뼛거렸더니, 솔로몬이 '에이 그냥 게임인데 찍어줘' 라고 윙크를 찡긋한다. 몇 명과 포토타임을 가진 뒤, 남자들이 다시 다가와서 웃통을 까면서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입고 한번만 찍어달란다. 솔로몬을 쳐다봤더니 또 윙크를 찡긋. 오케이. 라고 했더니 그 무리가 나에게 연신 어썸어썸어썸이란다.

 

 

△ 사진을 찍고 1분이나 지났을까. 이 외쿡인 오빠가 웃통을 까면서 옷을 내게 건네주었다. 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