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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5월 27일 :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 정신적인 면역 기능이 필요해요. 나는요.

 

 

 

견디기위해 한 줄 쓴다. 면접에서 떨어진 것 같다. '같다'는 정신방어용이니 떨어졌다. 오늘까지 연락이었는데, 조금전인 네 시까지는 어쩔줄 모르면서 무심한 척 하다가 네시 반 께에는 처연한 마음이 되었고 다섯시가 넘어서는 드디어 초연해졌다. 이번에는 뭐가 모자랐던가. 차라리 '귀하의 자질은 이래서 구리다' 라고 말이라도 속시원히 해주면 좋을텐데, 인권침해에 대한 소송과 이미지 타격을 걱정한 기업들은 항상 '넌 존나게 멋진 친구지만 함께 못해서 아쉽다'라고 얼버무린다. 헤어짐 앞에서 종종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말해줄 수 있어? 다음번 연애는 잘 해보고 싶어서' 라고 자기 발전에의 의지를 피력한 구남친들이 더러 있었는데, 뭔 개코방구같은 소리냐! 라는 대답과 함께 주먹을 한 방 날려주고 싶은 마음이었거든. 그 회사에 전화해서 '떨어뜨릴꺼면 서류는 왜 붙였어요!!! 왜 설레게 만드는데!!! 떨어뜨릴꺼면 왜 떨어졌는지 말이라도 해주라고!!!' 라고 소리치고 싶다.  뭔 개코방구같은 소리냐! 라는 대답이 돌아오겠지. 쩝.

 

 

늘 적당한 회사에 적당히 들어갔기 때문에, 취업준비를 제대로 해 본 적이 드물다가 이번에야 제대로 마음먹고서 가고 싶은 회사 몇 곳에 이력서도 넣어보고 면접도 보러다녔다. 얼떨결에 대기업이란 곳에 임원면접까지도 가봤고, 희한하게도 과정이 험난하고 절차가 복잡할수록 욕망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똑같은 사과라도 땅 위에 있는건 먹기 싫고, 저 높은 가지 위에 매달려있으면 탐스러워 보이더라. 나는 별로 먹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다들 주변에서 먹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함께 애쓰고 싶더라. 애쓰고 있더라. 사람이라는 게 참.

 

 

아무튼! 오늘 떨어진 회사는 정말로 가고 싶은 회사였다. 허리에 침을 맞으며 누워있다가 서류통과 사실에 눈물이 핑 돌만큼 기쁘기도 했다. 사실 서류에서도 어떻게 붙었는지 모르겠다. 업계 기준으로 아무 경력도 없었거든. 아무 경력이 없다는건 곧 아무 실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방이라도 정갈하면 누워서 천장이나 올려다보고 있겠구만. 내 지친 마음을 위로할 길도 없이 작은 방은 박스때기들로 가득찼다. 과연 오늘은 친구집에 가서 잠을 청해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방 한구석에 붙어있는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라는 글귀가 보인다. 언젠가 얻어온 붓글씨다.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러게요. 얼마나 쉬웠겠어요. 나는 대단한 걸 바란 것도 아닌데. 특별한 사람이 되고싶단 마음도 없는데. 그냥 작아지지만 않고 싶은데. 이러다가 자꾸자꾸 작아져서 없어져버리는게 아닐까.

 

 

그래. 오히려 이사라도 열심히 하자. 헤어진 직후에 닥친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울면서 짐이나 싸야겠다. 기말이 끝나면 내 인생에도 빛나는 여름방학이 있겠지.

 

 

(*) 힘을 얻기 위해 내 입사동기 '장그래'의 아버지인 윤태호 작가의 기사 몇 편을 읽었다. '본인의 욕망에 전력을 다하라' 는 말이 와닿는다. 좋다. 욕망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회, 욕망을 거세당한 사회 속에서 나는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 욕망 포에버!

 

http://www.nocutnews.co.kr/news/4050725 

http://blog.naver.com/micimpact/20170284681

 

 

(**) 글을 닫는데 면접전형 불합격이라는 메일이 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안다고. 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