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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5월 25일 : 한 사람의 서사

 

△ 미안합니다. 그대

 

 

 

 

장판감기는 일주일이 넘도록 떨어지질 않고, 이 좋은 오월에 훌쩍훌쩍 콧물을 흘리면서 짐을 싸고 있다. 아아.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못했는데! 뭔가를 덥석덥석 한 번에 많이 사는 성미인걸 본인 스스로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짐을 싸며 다시 한 번 눈으로 확인한다. 도대체 이 짐들을 어쩔꺼냐! 좁은 방에 짐들이 덜컥덜컥 쌓이는 모습을 보면 '나도 법정스님처럼 살고 싶다!' 넌덜머리를 내면서도, 왜 꼭 과일은 10kg 박스때기로 사서 썩히고 샴푸는 종류별로 사서 들여놓는지. 수건은 마흔 장이 넘고, 옷걸이도 이사를 오면서 육만원인가 칠만원어치를 샀기 때문에 백개가 굴러다닌다.

 

웃는 얼굴이 예쁜 아가씨는 나의 저지 때문에 계약 당일에도 방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오늘도 나의 게으름때문에 방을 확인하지 못했다. 미안합니다. 나도 빨리 새로운 집을 구해서 장판사고 싶답니다. 장판 위에서 마음껏 지지면서 유월을 맞이하고 싶답니다.

 

오늘은 잠깐이지만 아주 우스웠다. 이 동네를 떠나기 싫은 마음이 커서, 이 동네의 집들을 알아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집은 왜 내놓은거냐. 글쎄 말입니다!) 아주 괜찮은 조건의 방이 나온게 아닌가. 기쁜 마음에 클릭해보니 내가 내놓은 방이었다. 하루만에 나간 바로 그 방. 내가 지금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바로 그 방. 남 주려니 유독 괜찮아보이는 바로 이 방. 아 콧물이... 크흑.

 

아무튼 뭐 '모든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문제보다는 해결책이 많다. 징징거릴 시간에 해결을 하자.' 라는 며칠 전 가르침을 되새기는 수 밖에. 나와 동갑의 한 벤처 회사 대표가 강연에서 한 말인데, 조금 덜 못난 사람이 되고 싶으니 이 문제라도 잘 해결해야지.

 

 

 

* 어차피 며칠내로 비워야 할 집이라 냉장고를 채우지 않고 있는데, 지금 냉장고에 남은 것이 홍합밖에 없다. 얼마전 5kg를 사서 까다 얼려놓은 그 홍합. 이제 며칠동안은 홍합으로 버텨보려 한다. 부모님한테는 '이제 각자의 인생이니 터치는 그만' 이라고 쿨하게 말했지만, 지금 이 심정으로는 고개를 숙이고 고향집으로 기어 들어가 대형 장판에 몸을 녹이면서 TV나 실컷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