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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5월 11일 : 지금 뭐해 자니 밖이야?

 

△ 나무 밑에 누워있었더니 벌레가 후두두 근질근질

 

 

오늘 출근이었는데. 어제 늦게 잤는데도 새벽 여섯시에 눈이 반짝. 그래 멀리 가려면 바지런히 준비해야지. 급히 머리를 감고 옷을 입고 필요한 서류를 챙겨 뛰어나왔는데, 꽉 막힌 도로를 보니 숨이 턱 막힌다. 그래 그래. 이런게 출근이었잖아. 어서와 오랜만이지? 전철역까지 가는 버스를 잡아타야 하는데, 앞문까지 가득 들어찬 사람들을 싣고 버스는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 그 다음걸 탈까, 그 다음걸 탈까, 그 다음걸 탈까 하면서 버스를 여섯대 정도를 보냈다.

 

그리고 문득, 사실은 줄곧 들었던 '못 가겠다' 라는 생각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초조했다. 나는 만화 주인공이 아이야. 나는 나를 먹여 살려야할 의무가 있는데. 버스 예닐곱대를 보내느라 이미 출근도 늦어버렸고, 어느새 발걸음은 터덜터덜 다시 집으로. 오죽 했으면 집에서 다시 거울을 보고는 '친구야. 우리 이런적 없었잖아.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라는 심호흡을 하며 옷만 갈아입고 다시 뛰어나왔다. 이번엔 버스를 타리라. 버스 몇 대를 또 보냈다. 몇 대를 또 보내고 나서야, 이미 도착하면 출근이 한 시간은 늦겠다싶어 겨우 버스를 타고, 거듭 올라오는 나를 꾹꾹 누르며 전철 앞까지 갔다.

 

"원망 안 해? 진짜 원망 안 해? 진짜? 진짜? 진짜?" 몸을 그대로 돌려 다시 카드를 태그하고 밖으로 나왔다. 안녕.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출근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버스를 잡아타고 인근 공원으로 갔다. 눕고 싶다. 자주 여기저기 눕는다는 말을 했더니 엄마는 여자애는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나무 아래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다.

 

 

△ 그림같은 벤치

 

 

여기저기 누웠다가 아침부터 견학나온 중학생들 보기 머쓱하기도 해서, 몸을 일으켜 곳곳을 잠시 걷다가 빠져나왔다. 아름다운 초록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양화대교를 따라 걸었다. 양화대교 정신이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아니던가. 나는 지금 무지 아프고 하나도 안 행복한데. 양화대교를 들으며 양화대교를 걷는 아침.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마침 점심 시간이라 선배 회사 근처에 찾아가 불러내 밥을 얻어먹었다. 내 얼굴을 보더니 밥이 아니라 술을 해야할 얼굴이라며, 맥주라도 한잔하겠냐고 물었다. 크흑. 아니예요. 선배는 너는 아직 절박하지 않아서 그런 고민을 한다며, 너 같은 애는 바쁘게 몸을 굴리는게 답이랬다. 아닌데. 선배. 나 너무 절박해서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건데. 진짜 잘 하고 싶어서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건데. 라고 응수했더니 그래 너의 마음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게 삶의 과정이라는 걸 안다면 그리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고 일러주었다. 지금은 과거가 너를 공격하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그게 널 또 도와줄거라는 멋진 말도 들었다. 마음에 꾹 담아둬야지.

 

집에 돌아와서는 컴퓨터를 켰었나, 껐었나. 타이레놀 광고에 나오는 여주인공 포즈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앉아있었다. 밀려온다 두통. 몰려온다 슬픔. 하아. 울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마침 친구한테 "집이야? 차 한잔 하자."라는 연락이 왔다. 이놈의 백수는 찾을 때마다 집에 있고, 찾을 때마다 술,밥,차 가능이냐! 물론 가능.

 

친구가 콜라를 들이키면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내 모습을 보더니, 근래 본 얼굴 중에 가장 어둡고 엉망진창이라고 했다. 그리고 위로 차원으로 나에게 맛있는 탕수육과 볶음밥을 사주었다. 비가 쏟아져서 우리는 술을 먹으러 갔는데, 콧물이 나서 훌쩍거렸더니 울고 싶으면 울라고 말해주었다. 아니라고 웃으며 말했는데, 내 눈동자는 하루종일 울고 싶은 모양이었는지도.

 

(*) 깨어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