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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2일 : 구남친 클럽

 

△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고, 세상에 둘도 없는 그녀 품에 '니은' 하나만 갖다 안기면 세상에 둘도 없는 그년이 된다.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서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꿈 꾸느라 진을 다 뺐다. 어제의 힘들고 울적한 기분을 이미지로 치환하면 그런 장면인 것인가, 그도 아니면 어제 잠깐 만난 선배와 들렀던 까페가 공교롭게도 작년 이맘때 구남친을 처음 만났던 그 까페라 나도 모르게 무의식을 건드렸던 것일까. 구남친 시키가 꿈에 나왔다.

 

발단 전개 절정 위기는 다 건너뛰고라도 결말만 좋으면 되는 우리들 세상이 아니던가. 엔딩이 구리면 해피 발단, 해피 절정은 온데간데 없다. 어쨌든 구남친 시키와의 엔딩장면이 꽤 마음에 상처가 됐던터라 늘 미움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서걱서걱.

 

꿈에(꿈 꿀때는 꿈인줄은 꿈에도 모른다만)구남친이 갑자기 한밤에 우리집 앞에 찾아와 나를 불러내는 것이 아닌가. 그가 따뜻하고 다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가방에서 주섬주섬 종이 뭉치를 꺼냈다. 혹시 사과 편지인건가? 어쩌지, 다시 받아줘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심하고 있는데 그가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화선지에 붓 글씨로 써내려간 대단한 편지였다. 둘둘 말린 종이뭉치가 제법 두툼했다. 나를 향한 그의 깊은 마음이 담긴 글이었다. 이걸 붓글씨로 적어오다니. 우두커니 서서 편지 내용을 듣고 있는데 아찔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놈의 개새끼가 진짜!

 

연애를 하며 그가 느낀 나에 대한, 온통 마음에 안 드는 점이 화선지에 붓글씨로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너는 나를 다정하게 바라봐주지 않았고, 너는 나를 몰아세웠고, 취직하라고 압박을 했으며 어쩌구 저쩌구." 나는 듣는 내내 화가 끝까지 나서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그 편지를 읽어주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을 알았는지 어쨌는지, 긴긴 편지를 다 읽자마자 신기루처럼 뿅 하고 사라졌다. 나는 그의 절친을 찾아가 그의 행방을 다그쳐 물었고, "강원도 산골짜기로 피신을 갔다"라는 대답을 받아냈다.

 

어째어째 강원도 산골짜기에 숨은 그를 발견했는데, 마침 그의 부모님을 다 한자리에 모시고 회갑연을 하고 있었다. 갈아온 복수의 칼날이여, 별빛 아래 찬란하라 얍! 나는 나도 모르게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그에 대한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빼곡히 적힌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고, 그의 부모님 앞에서 열심히 읽었다. 당해보라는 심정으로. 그의 부모님의 표정을 살필 겨를도 없이, 장면이 전환되어 곧바로 대전모드. 어느 아파트의 1층과 옥상을 왔다갔다하며 정말 치고 박고 열심히 싸웠다. 나는 어느 층 변기를 다 부쉈으며, 갑자기 옥상에 올라 스나이퍼로 분해 장총을 들고 엎드려 매복해 있기도 했다.  

 

결과는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미워하던 사람을 장장 몇 시간동안 꿈에서 더 열렬하게 미워하면서 치고 박고 싸우다니. 몸과 마음의 힘이 쭉 빠지고 불쾌감이 올라온다. 아침에 일어나서 '헤어진 연인의 꿈'에 관한 해몽을 찾아보았는데, 대부분이 꿈에서 다시 화해했다였지 나처럼 꿈에서까지 치고박고 싸우는 경우는 없더라. 다시는 안 봤으면. 꿈에서라도.

 

 

 

(*) 아. 빨리 연애해야지. 연애의 마지막 설정값이 미움인지라 마음에 미움만 가득 들어차앉았네. 미움을 밀어낼만한 빠워 오브 러브를 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