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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5월 8일 : 오늘은 어버이날, 그러나 어버이 세상은 아닌걸로

 

△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모노레일. 모노레이루 데쓰~! 갑자기 머리 위로 뭐가 휙 지나가서 놀랬다.

 

 

 

어버이날. 면접을 보았다. 면접을 보게 된 경위도 쪼까 웃긴데, 몇몇의 헤드헌터(난 이 단어가 무섭다.)가 자꾸 동일한 회사를 추천하는 것이 아닌가. 무엇에 심사가 뒤틀린 날이었을까. 신랄한 면접을 보고온 다음 날일지도 모르겠다. "아! 왜 자꾸 저한테 추천하시는거예욧!" 따져 묻다가 Mr.헤드헌터의 긴긴 말씀을 들었고, 듣다보니 '어머 너무 가고 싶네' 라기 보다는 '괜히 죄송하네' 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마트에서 시식 상품을 정신놓고 집어먹다 아주머니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만두 한 봉지 카트에 끼워넣는 것처럼, 그래 뭐 이력서야 써드리지, 라는 심정으로. 그런데 정말 웃기게도 그 성의없는 이력서가 합격이 되었으며, 마침 면접을 볼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해서 가기로 했다. 그러나 정말 스스로 '면접을 볼 수 없는 상황'을 만들려는 웃픈 노력들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하나. 늦잠 자기. 늦잠을 자보려고 했으나 잘 안됐다. 심지어 누워서 한 시간 여를 꿈지럭 거렸으나 그래도 준비하기에 충분히 이른 시각.

 

둘. 미처 준비를 못하기.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나는 정장 따위 키우는 인간이 아니며, 심지어 그 흔한 검정옷도 없는 인간이라는걸. 연두색 스타킹이라든가, 형광 컬러의 찬란한 옷들은 금세 찾아낼 수 있겠다만, 정말로 면접에 입고 갈 옷이 없었다. (알고 있었다!) 이틀전에 만난 친구에게서 충분히 빌릴 수 있었다는 것도.(알고 있었다!) 아 그런데 나는 정말로 꽤 응용력과 임기응변이 강한 친구였구나.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간 블라우스와 어떤 재킷과 치마를 장착했더니 꽤 그럴듯한 면접룩이 완성되었으며, 심지어 신경쓴 것 처럼 보였다.

 

멀끔한 내 모습을 문득 거울을 통해 보는데, 지금 내 삶이 이런 모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벗겨놓으면 말도 안되는 조합이지만 밖에서 보면 꽤 멀쩡하게 잘 굴러가는 것 같은 삶일까 하고.

 

셋. 시간 죽이기. 티비를 보기 시작했다. 티비를 보다가 정신을 놓고 출발 시각을 놓쳐 '어머! 바보같은 나!' 라고 스스로를 책망한 뒤, 어쩔 수 없이 슬픈 눈으로 티비를 계속 보는 걸로. 결정적으로 프로그램이 재미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원하지 않는다면 가지 않는 것이 맞을텐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기어코 데리고 갔다. 친구야. 넌 아직도 너무 호불호가 강하구나. 인생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거야.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노래도 있잖니? 훗날을 도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중얼중얼중얼중얼. 

 

실기를 보고, 임원진 여섯인가 일곱명 앞에서 중얼중얼 뭔가를 말했으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한 면접관이 나에게 '이력서를 보니 별로 경쟁력이 없네요. 취직 때문에 이것저것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느낌?' 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이런 말은 정말 내 마음을 꼬집는 말이다. 꼬집! 아얏! 그 말이 너무 맞아서 아프기도 하고, 전혀 맞지 않아서 아프기도 한 말. '취직을 위해서 이것저것 한 적은 없습니다.' 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젊은이여, 이것저것 시도하라 라고 세상은 떠들지만, 그 시도 앞에는 '메리트 있는' 이라는 수식어가 괄호 속에 쏙 감추어져 있다. 이미 얼마 전에 다찌마와 리를 닮은 한 남자에게 내 인생의 모든 방면을 자세하게도 꼬집힌 뒤, 삼일을 앓아눕지 않았던가. 머리를 싸매고 '엉엉, 난 여태 잘 못 살아온거야? 엉엉엉.' 엉엉엉의 결론은 결국 하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앞으로 좀 더 잘 사는 수 밖에. 어떡하겠는가. 이미 과거는 지나갔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본다면 그렇게 보는 거겠지. 과거는 뜯어고칠 수 없는 거니까. 그리고 진실로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실수하고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나는. 왜냐하면 과거의 나는 너무 어리고, 그래서 좁은 나만의 시각에 갇혀있고, 그리고 무턱대고 용감하고.

 

'삼일 엉엉엉'은 고작 사흘로 끝이 났지만 앞으로도 얼마나 무수히 많은 엉엉엉이 있겠는가. 내가 가장 약해진 때에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성을 끊임없이 부정당하면서.

 

아. 앞으로 좀 더 잘 사는 수 밖에 없구나. 그리고 결국 내 편은 내가 되어줄 수 밖에 없구나. 그게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멍청한 방향이든, 어쨌든 나랑 같이 손잡고 합심해서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같이 해놓고 엔딩장면에서 "왜 그랬어! 나쁜 년아!" 라고 등짝을 두들겨 팬다면 그것만큼 황망하고 서러운 경우가 어디있겠는가.

 

뭔가를 써넣고, 중얼중얼 뭔가를 말했으며, 멍하니 앉아있는 이 모든 것을 다 하는데 여섯시간 정도가 걸려서 잠잘 때까지 지끈지끈 편두통이 몰려왔다. 나는 나의 방패가 되겠다. 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