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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1월 26일 : 돌고 돌아서, 결국에는

 

 

 

내 이럴줄 알았다. 오늘도 역시 낮과 밤이 바뀐다. 새벽 네시 반. 삼십분에서 한시간 후 쯤에야 잠이 쏟아질 것이고, 눈을 뜨면 해는 중천이겠지.

 

컴퓨터를 고치고 나서는 항상 켜놓는 편이다. 늦게까지 잠이 들지도 않거니와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꼭 뭔가 쓰고 싶어 컴퓨터를 켜고 싶기 때문이다. 예전에 가족들과 같이 살 때는 컴퓨터가 거실에 있었는데(원래는 남동생의 방에 있었으나 흔하디 흔한 이유로 컴퓨터는 거실로 축출당했다. '축출' 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어렵네. 컴퓨터를 남동생 방에서 축출했다? 누나의 꼰지름으로 인한 컴퓨터 축출?) 뭐 아무튼 그래서 새벽 세시까지 숨을 죽이고 불 꺼진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안방에서 어머니의 노기가 잠결에 실려 들려오곤 했지. "안 자나!"

 

지금은 성인이라서 새벽에 자고 늦게 일어나도 아무도 뭐라는 사람 없고, 새벽에 컴퓨터를 다다다닥 거려도 아무도 뭐라는 사람 없다네. 이 사실이 가끔 슬프기도 하다네. 언제까지 낮과 밤을 뒤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낮에 깨어있기를 좋아하는 내 몸은 이미 좀 많이 지친 상태. 두 달째 이런 생체 리듬을 유지중인데, 이걸 바꾸려면 하루 안에 바꿔야할텐데. 오늘 하루 잠을 안자고 버티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새벽에 문득 든 생각인데 (그러니까 바로 몇 분전), 드로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타고난 많은 재능 중에 그림에 관한 재능이 비교적 빨리 발현된 편인데,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나름 한 그림 하는 분들이라 좋은 유전자를 물려 받아서 그런가 싶다. 그리고 유독 어머니가 못 다이룬 꿈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신 편이었고. 그렇다고 뭐 거창하게는 아니었지만. 48색 크레파스라던가 63색 크레파스, 색연필, 미술학원, 가장 좋은 물감과 붓 같은 것, 미술학원. 나름 市 대표에도 나가고 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어머니가 정말의 '지원'의 의미로 미대를 보내주었으면 지금 내 인생은 또 어떻게 됐을려나 잠시 고민해본다. 열아홉, 스물의 어린 나이에 미술 같이 돈이 많이 드는 학문은 정말로 지원이 아니면 불가능하잖아. 못난 소리 같아도. 공부도 곧잘 했었고, 그래서 더더욱 진로에 대해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일 수 밖에 없었으며, 수능을 치르고 나서 문득 어머니에게 "나 미대 갈래." "안된다." 안되는건 안되는거지. 어차피 썩 가고 싶지도 않았고.

 

아무튼 어른이 되어가면서 참 많이 잃어버린다는 생각을 한다. 반대급부로 무언가를 거창하게 얻는 것은 아닌데, 많은 것을 잊고 잃어버린다. 새벽에 문득 '드로잉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살면서 잃어버린 건 그림에 대한 재능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안다. 스쿠터를 타고 싶은 마음도 잃어버렸고, 누군가를 깊게 좋아하는 마음도 잃어버렸고, 작은 것에 일렁일렁하는 마음도 잃어버렸고. 뭐 이렇게 많이 잃어버리는거야?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건가? 으레 가지고 있던 것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잃어버리고는, 나중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겨우 찾게 되는 것. "오! 보물은 내 안에 있었어요!" 라고 소리치면서. 그건 어른이 아니라 븅신이지.

 

아! 어쩌면 그래서 어른들 중에 바보 머저리가 많은 걸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