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날씨

2014년 10월 6일 : 위안

 

△ 어제 까페 마감시간까지 붙들고 있었던 마스다 미리의 <아무래도 싫은 사람>

 

생활을 쪼개쓰는 방식은 비슷한 것 같지만, 확실히 마음 한 켠에 빈 공간이 생겼습니다. 요즘 부쩍, 그래도 뭔가를 끄적이거나 끄적이려 하는 걸 보면요. 빈 공간에 앞날에 대한 걱정이 가득차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이 가득 차기도 하고 그래요. 퇴사를 3주쯤 앞두고 있습니다. 여태 별 생각 없다가 오늘 문득 다이어리를 뒤적이는데 ↘ 이렇게 첫째주에서 둘째주로 슬그머니 줄바꾸기를 하고 있는거예요. 보통 한 달이 넉 주니까. 어머나 깜짝이야 싶다가도 금새 '아 양갱 먹고싶어. 단팥죽 또 먹고 싶어.' 로 뒤바뀌긴 했지만요.

 

나쁜 버릇이라면 나쁜 버릇이 다시금 나오고 있어요. 개천절에 무슨 컴퓨터를 열시간 동안이나 켜놓고 하루종일 한번도 안쉬고 들여다보고 있었거든요. 와. 요즘 인기라는 <비정상 회담>을 한 회씩 야금야금 보다가 아예 통으로 다 받아서 본건데, 원래 드라마든 개그 프로그램이든 그렇게 진득하게 보진 못하거든요. 회마다 챙겨봐야 하는 드라마는, 그래서 좋아하는 드라마가 거의 없기도 하고요. 나랑 정서나 코드가 굉장히 잘 맞아야 비로소 챙겨보는데, 그때는 또 오타쿠 기질이 나와서 이렇게 하루 왠 종일 보기도 하고 그래요. 오히려 호주 드라마나 미국 드라마 중에 소소한 몇 가지를 좋아합니다.

 

아무튼 <비정상 회담>을 왜 그렇게 하루종일 보았냐. 심지어 오늘도 집에 와서 또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그냥 되게 많이 위로가 됐던거 같달까. 그네들이 한국와서 힘들고 어렵게 지낸 만큼이나, 나도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생각도 나고, 객지 생활 했던 생각도 나고, (물론 지금도 객지 생활이지만!) 직장 생활 하면서 진짜 쌔빠지게 고생하던 생각도 나고. 아 그런 의미에서 <나 혼자 산다>도 잘 챙겨보고 있네요. 그러고 보니.  

 

참... 얼굴도 모르는 TV 나오는 외국인들한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위로를 받는다는게, 어찌보면 좀 불건강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잠깐 해봅니다만. 뭐. 다들 영화보면서 울고 드라마보면서 울고 그러잖아요. 장위안이 돈 없어서 맨날 맨밥에 간장 비벼 먹었다는 얘기도 참 많이 남고, 에네스가 용돈 10만원 받을 때 친구에게 6천원짜리 커피를 사고는 그 돈이 너무 자기한테 커서 내내 생각했다는 그 말도 마음에 남고. 로빈이 모텔에서 아는 형이랑 생활했다는 얘기도 기억나고... 아, 그거 참 좋더라. 장미여관이 게스트로 나온 회였는데 '서울살이 그만두고 싶은 제가 비정상인가요?' 라는 말.

 

TV에 나와서 이제서야 웃고 떠들면서 이야기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을 내달리는 기분이니 얼마나 참담했겠어요. 그래도 다들 멋있더라. 꿈 하나 가지고 낯선 나라에 와서 버티고, 낯선 도시에 와서 이 악물고 버티는게. 막연함을 하루하루 몸으로 구체화 시켜 간다는게.

 

학교 졸업하고 나름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똑 떨어지는 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해보겠다고 버티고 버틴거 같은데 요즘 드는 생각은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뭐였지?' 라는 아리송한 물음표 하나. 마음이 약해지고 박해지는 날엔 물음표를 마구 나에게 채찍처럼 휘둘러 나를 아프게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고마워. 잘 버텨줘서.' 라는 말. 뭔가를 향해 어쨌든 가고 있고 열심히 가고 있잖아. 다음 번엔 그 길이 좀 더 재밌었으면 하는 것 뿐. 

 

 

(*)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