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品/곳

11월의 북한산 : 늦은 산행

 

제발 나 좀 데리고 가줘요, 윽박질러서라도

 

한달에 한 번 정도 있는 걷기 모임. 지난 여름 - 아, 벌써 '지난' 여름이라니 - 에 첫 모임에 한 번 참석하고는, 왠지 힘든 기억때문인지 게을러서 그런건지 어쩐건지 저쩐건지 그 뒤 쭈~욱 빼먹다가 오늘 용기내어 북한산 등반에 참석했다.

 

올 가을엔 회사에서 공식적인 가을 산행도 없고, 같이 산행가자고 할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그냥 넘어가나... 하다가 이번에 걷기 모임에서 북한산 등반이 잡혀서 고민. 나도 이해못하는 나의 변태심리가 있는데, 어떤 모임 어떤 약속이든 일단 무조건 가기 싫어한다. 그런데 가고 나면 제일 좋아하는 것도 나.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반 강제라도 나를 끌고가곤 하지만 이렇게 자발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모임은 정말 힘들다. 내 안의 변태는 어제 새벽 1시 반까지 몰려오는 잠을 참았다. 일부러 늦게 일어나서 북한산 모임에 참석을 '못'하기 위한 것.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새벽 6시 반에 알람을 두 번이나 맞춰두는. 나 진짜 변태 맞다.) 결국 6시 반에 일어나 후닥닥 챙기고 뛰어나왔다. 가을산행, 가을 산행 노래를 부르면서.

 

연희동을 떠나게 된다면, 다음번엔 잔잔한 부암동에 살아볼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정말 연희동은 살면 살수록 깨알같은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동네다. 불광역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도 있다니. 진짜 너 사랑스럽구나.

 

 

사랑합니다, 오뎅이시여

 

역시 코리안 타임. 불광역 2번 출구에서 8시까지 보기로 했으나, 역시 내가 제일 일찍 도착했다. 한동안 3번 출구에서 혼자 서있었다. 20분 정도 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드문드문 등산 복장의 사람들이 보인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뚫고 모락모락 피어나는 자극적인 김의 향연. 지그시 째려보다가 "정말 자극적이네요!" 라고 한마디 했더니 선생님이 오뎅을 사주셨다. 으하하하하.

 

 

나도 젊은 사람들이랑 놀아야 하는데

 

어쩌다보니 내 주변에 젊은 사람들이 없다. 고향가면 죄다 또래 친구들인데, 여기오니 새로 친구 사귀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젊은이들 모임에 선뜻 나가기 망설여진다. (은근히 나는 또래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쥐뿔도 없는건 마찬가진데. 피식) 회사에서도 마흔줄 선배랑 치고박고 꼬집고 때리고 싸우는 정도니 말 다했다. 하긴 젊은 사람들이 토요일 아침부터 이불 박차고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북한산에 오르기는 더더욱 힘들겠지. 그렇다고 오늘 모인 멤버들이 싫다는건 결코 아닙니다!

 

오늘 모인 멤버들은 나 빼고는 다 서로 안면이 있는 분들이다. 애기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배낭 잔뜩 먹을 것을 싸오셔서 정말 배부르게 먹었다. 다른 분들도 과일, 견과류, 과자 잔뜩 싸오셨다. 선생님은 아몬드를 싸오셨는데 유난히 향이 구수하고 달아서 인기 폭발. 아몬드 껍질째 구운 것을 일일이 껍질 벗겨 온거라고 하신다. 아유~ 저도 다음엔 뭐라도 들고 갈게요. 오븐이 있으면 빵이라도 구워갈텐데, 쩝쩝.

 

 

 

 

 

 

 

가을은 다 끝나버렸지만

 

등산복은 커녕, 겨울에 입을 옷도 영 마뜩찮은 자취생. 추울까봐 배에 핫팩 붙이고, 목티에 후드에 다시 패딩입고 나섰더니 영 폼이 안난다. 귀마개 달린 모자와 안경만 쓰면 바보가 되는 내 얼굴은 옵션. (엉엉)

 

가을산행 노래를 불렀던 이유는 산에서부터 시작되는 알록달록한 가을 정취를 느끼고 싶어서였지만, 11월 말까지 단풍이 있는 것도 이상하겠지. 말라빠진 낙엽들과 마른 나뭇가지 가득한 북한산이었지만, 누렇게 마른 솔잎이 깔려있는 길을 디디는 느낌이 참 좋았고 고즈넉한 늦가을 햇살도 근사했다. 그리고 의외로 사람구경도 무척 재미있었고.

 

산 중턱에 걸터앉아서 "아이씨, 이제 저질체력 다 됐어. 예전엔 진짜 날아다녔는데!" 세월의 흐름을 한탄하는 중년의 아저씨. 몸에 착 붙는 얇은 면티하나 입고 날렵하게 산을 타면서 "다음엔 팀장을 여기 데려오자." 며, 팀장 엿먹일 궁리를 하는 두 청년들. 잘 가다가 갑자기 풀썩 넘어지는 꼬맹이. 아...정말 미안하지만, 오랜만에 사람이 울음 터지는 순간을 지켜본 적이 진짜 오랜만이거나 거의 처음인 것 같다.

 

 

 

 

 

 

 

 

 

 

그리고 금선사  

 

오늘 등반의 목적지는 금선사. 사람도 없고 조용하다. 절 한바퀴 휙 돌고왔다. '국수공양간'도 있던데 국수는 언제 먹을 수 있을까요?

 

바위 속을 파내서 계단을 만든 후, 불상이 있는 곳으로 연결한 통로도 있었는데 신기방기.

 

 

 

 

 

 

 

 

 

 

 

모든 만남의 마무리는 언제나 술이다

 

산에서 내려와 유명한 두부김치집을 갔는데, 먹다보니 누군가가 "안주네"라고 말했고 그 바람에 막걸리 한 사발씩 했다. 술을 못하는데다 몸이 많이 지쳐있어서 난 벌~겋게 되서 집으로 갔다는. 왜 아줌마들이 주말만 되면 기를 쓰고 산에 올라가나 했는데, 등산을 정말 싫어하는 나로써는 이해불가한 집단 행동이었는데 등산의 맛을 슬금슬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선생님한테 "새해목표로 일주일에 한 번 등산하기를 정했어요"라고 말씀 드렸더니, "거창하게 새해로 갈 것도 없고 12월부터 해보세요." 라는 답이... 왠지 12월부터 해야된다니까 부담되는건 뭘까요. 새해목표는 미루라고 있는 것 아닌가요. 아무튼 근 5년만에 찾은 북한산,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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