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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는 것을 되게 하고

요즘 운동을 하나 하고 있다. 스물다섯이 가기전에 좋은 습관 하나는 붙여 평생 가지고 가자는 심산도 있었고, 중학생 무렵부터 만성적으로 시달리던 허리통증도 고쳐볼겸, 무료한 일상에 발랄한 느낌표 하나 찍어볼 요량으로 꽤 열심히 다니고 있다.  

잘 안된다. 한 클래스 열명 남짓한 수강생중에 선생님이 언제나 주목하고 지목하는 것은 나다. '지현씨! 어깨 올라갔지!' '지현씨! 팔꿈치 들어야지!' '지현씨! 손에 힘풀고!' '지현씨! 발목 더 제껴! 악착같이 하란말이야! 악착같이!!' 하아. 매 시간마다 이어지는 선생님의 사랑의 잔소리. 한동안은 괜한 주눅이 들어 스트레스도 많이 받은게 사실이다. 겉으로는 헤헤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왜 다들 이렇게 쉽게 되는데, 나만 안되는거야. 나만' 하고 괜히 애꿎은 내 무릎을 툭툭 때려도 본다. 다들 쉽게 되는데 왜 나만 안될까. 다들 별 다른 노력없이 잘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악착같이 해도 안될까. 이 기분-조금은 불쾌하고 우울한-. 예전에도 맛본적 있었지. 문득 고3때 생각이 난다. 나는 수학을 유달리도 못했다. 수학 잘하는 친구가 어쩜 그리도 부러웠는지. 괜한 오기인지, 미련한 근성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바보짓을 한건지 알수는 없지만 나는 고3시절 공부량의 70퍼센트 이상을 수학만 붙들고 있었다. '하면 다 돼! 안디는게 어딨어? 다 핑계지!' 라는 수학선생님의 말을 야자시간마다 곱씹어가며 언제나 붙들고 있던건 수학. 그렇지만 해도 잘 안되더라. 그건 정말 어쩔수 없는 거였다. 내가 별다른 노력없이 언제나 환상적인 언어점수를 자랑했던 것 처럼, 죽어라 노력해도 안되는건 안되는거였다. 그때는 그걸 인정할 수가 없어서 자괴감에 눈물만 줄줄 흘렸었는데, 살면서 차차 알게됐다. 그리고 나도 부드러워졌다. 어쩌면 게을러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 '안되는 건 안되는거야.'

안되는걸 되게 하는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어라 해도 안되는건 안되는건데, 내가 열시간을 투자해서 노력해도 어떤 놈은 1분안에 그걸 끝내버리는데 그럼 내 열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안되는 건 안되는거' 라 인정한 꼭 그만큼, 내가 삶에 있어서 한결 더 누그러 꼭 그만큼, 나는 덜 악착같아졌고 더 게을러졌다.

그런데 말이다, 요즘 '안되는 걸 되게'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본다. 고3때 숫자와 씨름하던 내 모솝을 다시 본다. 끙끙. 낑낑. 괜히 남들과 비교해서 한숨만 하아. 그렇지만 안되도 되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끙끙대는 내가 기특하다. 발목이 착착 붙는 X자형 다리도 아니고, 어딘가 허술한 무게중심에 원래부터 타고난 어리숙함이 더해져 뭔가가 빠진 느낌이다. 어깨, 손, 허리, 무릎, 발. 시간이 가도 아직도 제자리인것만 같고, 남들은 저만치 멀리멀리 가는데 나는 제자리를 맴맴 돌고 있는 기분. 그렇지만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것에서, 그리고 낑낑대면서도 가끔은 마음 상하면서도 한편으론 살며시 웃고 있는 얼굴. 그런 내가 좋다. 못하는 건 못하는거다. 죽어라 노력해도 100을 못찍을수도 있다. 그렇지만 웃으면서 낑낑댈수있으면 그걸로 된거다. 낑낑대면서도 웃을수 있는 깜냥 하나면 나는 됐다. 좋은 스물 다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