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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용감무쌍이다 : 좀 더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면


사진은 나의 2년전 영국여행, 템스강에서 찍은 할머니다.
나는 그때 한국으로 돌아와 할머니의 사진밑에 '낭만'이라고 적어넣었다.


며칠전이었나. 남자친구와 길거리를 걸을때였다. 한 커플이 우리 옆을 스쳐지나갔고, 우리는 거의 동시에 입을 뗏던것 같다. 정면을 응시하면서, 마치 그들은 원래부터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이. 그러나 가히 절망에 가까운 탄식을 내뱉으면서. ‘저건 아닌데!’ (키가 엇비슷하게 큰 남녀 한쌍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까만 레인부츠를 똑같은 것으로 구입해 신고 있었다. 유독 돋보였던 이유는 남자의 반바지때문이었으리라.) 유난히 보수적인 경상도 특유의 성향도 한몫했겠지만, 어쨌든 이땅에서 나고 자란 보수적인 반지현은 패션피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마 그들을 목격한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했으리라. (일례로, 경기도 지역에서 새빨갛고 새파란 양말이 유행하기 시작한건 길가의 산수유가 빵빵 터지던 올해봄이었다. 오슬오슬 추워지는 지금까지도 빨간양말은 여전히 건재하더라. 그렇지만 대구지역에서 빨간양말을 반바지 아래 당당하게 드리운 청춘들은 아직까지 목격하지 못했다. 이 지역 사람들이 그렇다.)

 옷차림에 유난떠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남 입은 옷보고 가타부타 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뭐랄까. 한국, 특히 이 지방 사람들의 옷차림은 너무 재미없다. 버스차창밖으로 멍하니 시선을 던지면서 생각한다. 아 재미없다. 가을이 오면 처자들은 똑같이 두께가 있는 까만 스타킹에 원피스 혹은 반바지를 매치할테고, 남자들은 여름철 입던 청바지에 체크무늬 셔츠, 혹은 브이넥 니트를 입겠지. 브이넥 니트라도 멋스럽게 스카프 하나 둘러주면 좋을텐데. 아직까지 그런 근사한 남자는 목격하지 못했다. 경대북문 근처에서 스포츠 샌들에 하얀양말을 종아리 알통까지 올려신은 남자는 봤어도. 킥킥.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거의 5년 가까운 시간을 분홍색 입은 남자에 목메왔다. 나의 로망. 지금은 분홍색=여자색 이라는 공식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여겨지지만, 내가 핑크보이pink boy를 나의 로망으로 점찍을때만해도 그 로망은 시대적 노망으로 여겨질만큼 길거리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분홍색 입은 남자를 찾기 힘들던 때였다. 그래서 내가 분홍색을 이상형의 컬러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길을 걷다 우연히 내 곁을 스쳐지나간 훈남의 셔츠가 분홍색이었던지, 그가 폴폴 풍기던 훈내의 베이스컬러가 분홍에 가까웠던지 아무튼 내가 분홍색에 집착하게 된 계기는 알 수 없다. 다만, 매년 봄이 오면 괜히 콩닥거리는 처녀가슴으로 분홍색 입은 남자가 있나 없나를 열심히 두리번거리다가 저 멀리 분홍색 남성으로 추정되는 생물체가 어른거리면 달려가서 박수를 쳐주고 싶을만큼 기뻤다. 물론 화를 내며 그 옷을 당장 벗기고 싶은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사토리얼 리스트. 넘기다 보면 ‘우와’하는 탄성이 나올만큼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나의 경우에는 70%에 가까운 패션을 ‘이건 뭥미’ 고개를 갸웃, 다시 한번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봐야했다. 그리고 곰곰 생각한다. 세계의 패션피플들이라는데, 도무지 패션이란 난해하구나. 나는 패션이랑 아무래도 거리가 먼 인간인가보아.

나는 여전히 분홍색 입은 남자를 좋아한다. ‘앗 분홍색 입었네’ 라는 주위의 탄성을 자아내는 그런 분홍말고, 분홍색이 너무나 멋스럽게 녹아들어서 분홍이 분홍인지도 모를, 그런 남자가 좋다. (분홍색 남자가 흔해진만큼이나, 분홍색 남자에 대한 나의 집착에 가까운 집중력도 옅어지긴 했다.) 지금은 어떤 남자가 좋으냐. 글쎄- 라고 잡아떼려다 이틀전 버스차창 밖으로 훔쳐본 남성이 생각났다. 그렇다. 나는 백팩을 맨 남성을 좋아하는구나. 짙은 감색 바지에 깔끔한 검정 브이넥 니트. 그리고 남자들의 그 목이 짧은 구두를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끈 달린 갈색구두에 살짝 비쳐보이는 복숭아뼈. 그리고 패션을 완성하는 백팩! 환호하면서 그 남자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는데,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하다는 찬사를 들려주고 싶었다. (잡지편집장처럼, 된장냄새 풀풀 풍기는 이런 문장 하나쯤 써보고 싶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소화하기는 쉽지 않은데, 잡지 카탈로그를 여기에서 만나다니. 흐뭇.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면, 동성로에서 마주쳤던 그 장화커플을 이해하는 패션감각을 키워야겠다, 는 게 요지다. 시도를 못할바엔 이해라도 하는 안목을 갖추자. 뭐 이런거. 여전히 나는 티셔츠에 운동화 구겨신고 다니겠지만 다음번엔 장화커플, 아니 플레어치마 커플을 만나도 ‘오 패션피플’ 하면서 넓은 패션의 세계를 음미하는 여성이 되어야지. 그러고 싶다.


* 패션과 새로운 메뉴는 늘 틀을 깨는 용감함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 같다. 용감하고 무모한 시도를 통해 기존의 자아를 깨부셔보는 것, 새로운 세계로 한발 더 나아가는 것. 무서워 하지 않는 것.

어느 식당을 가든 스파게티는 늘 크림스파게티만 고집하는 나는, 이제부턴 좀 토마토 스파게티가 되어볼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아 맞어, 난 시금치 카레를 시도한 여자라구.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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