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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은 본질에 다다르지 못하는가

빅터 파파넥의 한 저서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현대 사회에는 쓸모없는 디자인이 너무 많다고. 그 예로 카메라를 들어 설명하는데, 광학기계로써의 카메라의 본질이 일본의 컴팩트한 토이카메라 등으로 많이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진지성이 결여되었다는 뜻이겠지.

읽을 당시에는 굉장한 반발심이 들었다. 진지한 태도에서만 훌륭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 장난스러움은 본질의 테두리에 접근하지 못하는가? 장난을 삶에 있어 엄청나게 높은 가치로 쳐주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는 있어도 인정하긴 힘든 주장이다.

아무래도 '광학기계'로 사물에 접근하는 사람과 '장난감'으로 사물에 접근하는 사람의 태도와 마음가짐, 그리고 결과물은 상당한 차이를 가지겠지만, '장난감'으로도 얼마든지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사실 많은 역사가 장난의 위대함을 증명해주지 않는가. 가볍게, 별 생각없이 시작한 일들이 근사한 결과를 가져다 준일이 참 많잖은가 말이다. 꼭 정신을 엄숙하게 무장하고 덤벼야 할까.

광학기계와 꼭 같은 원리의 장난감을 가지고서 정신적 부담감을 벗어던지고 재미있게 놀 수 있다면, 또 그로 인해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장난감은 꽤 '엄숙하고도 진지하게' 존재의 역할을 다한게 아닐까.



* 빅터 파파넥은 디자인의 본질, 디자인에 깃든 정신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다. 그는 물건을 만들기에 앞서 디자이너가 지녀야할 정신을 강조한다. 의도의 진정성, 인류문화에 대한 이해. 삶과 타인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허투루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지구를 사랑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기에 버릴 물건은 애당초 만들지 않겠다는 말이다.

미친듯이 찍어내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전세계에서 각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1,2만원 주고 산 토이카메라는 금방 시들해진다. 자꾸만 만지게 되는건 큰 맘 먹고 산 광학기계다. 나도 안다. 장난은 한때라는걸. 그도 잘 알았기에 그런 말을 했을거다. '장난은 한때란다. 얘들아. 자원낭비, 환경오염은 그만 시키고 좀 진지하게 책임의식을 느껴보렴.'

의식의 각성은 사람들이 입고 쓰는 물건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디자인의 각성이 일어난다. 지금 점차적으로 그러하듯이.

나도 몇달전 느꼈던 반발심은 느끼지 않는다. 삶에서 장난을 즐기지 말라는게 아니라, 책임의식을 갖고 살아가라는 의미였음을 이제는 알겠다. '좋은' 물건의 생산을 무작정 엄숙한 삶으로 연결지어 생각한 것도 과한 것임을 알겠다.

그렇지만 장난감-지양해야 할 디자인-을 포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씹어도 좋고 물어뜯어도 좋고 만져도 해롭지 않은 환경호르몬에 안전한 좋고 멋진 장난감보다는, 백원 이백원주고 산 '조잡한' 장난감이 나는 아직도 좋다. 좋아서 미치겠다. 지구환경을 위해서, 인류에 대한 책임의식의 실천으로 100년을 써도 질리지 않을 훌륭하고 좋은 물건을 사는게 맞다. 그렇지만 나는 토이카메라의 사소한 즐거움이 좋고, 조잡한 물건들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좋다. 나는 조잡하고 사소하고 쓸모없는 것들에서 삶의 원기를 얻고,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서, 나는 토이카메라를 사면 백년은 써야겠다. 100원짜리 로보트는 유리장에 잘 진열해놓고, 매우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로 그들을 아끼며 사랑해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싸고 조잡한 것들에서 느끼는 애정을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이게 내 최선이다. 그리고 세상이 완전히 다 좋은 디자인으로만 채워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야말로 장난은 한때이니. 이 장난이 언제까지 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장난감이 어느 순간 손에서 사라진 그때겠지. 강요하지 않아도 자라나며 저절로 알게되니 그때까지는 조잡한 것들이 여전히 존재해주기를.(중국이 지구상에 건재하는 한, 특히 그렇겠지만!) 

아직까지는 조잡하고 허름한 나의 정신세계가 좋다. 파파넥 님하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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