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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엄청나게 보수적인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엄청나게 보수적이다. 지난날에는 나의 보수성향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볼 동기도, 계기도 없었지만 살면서 차츰차츰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나의 외골수 보수성향을 발견하게 된다. 나같은 유형의 사람은 습관이나 성향에 지나치게 충직해지기때문에 극極으로 치닫기에 꼭 알맞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왜 교문 맞은 편의 문구점빼고는 다른 어느곳도 가볼 생각을 못했는지-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봄에, 새학기에 맞춰 전학온 짝꿍이 나에게 떡볶이를 사달라고 했다. 나는 학교에 떡볶이집이 있는가를 의아하게 물었고 그 아이가 도리어 나를 이상하게 봤던 기억이 난다. 떡볶이 집은 내가 늘 가던 문구점의 옆옆 가게였음. 어린 마음에 충격이 심했다-동네 아이들과 함께 모기차를 따라 뛰다가도 내가 알던 길에서 조금만 벗어난다 싶으면 매캐한 연기의 황홀함을 뒤로하고 얼른 집으로 달려오곤 했다. 그에 반해 내동생은 모기차를 끝까지 따라 뛰며 신기하게도 집으로 척척 찾아오곤 했는데 말이지. 낯선 것을 거부하고 익숙한 곳에서만 행동하는 내 성향은 길위에서 어찌나 쓸모가 없는지. 이런 성향은 나를 자타공인 유명한 길치로 키워냈다. 

핸드폰이나 mp3등 최신모델이 나와도 시큰둥한데 기계류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기계류에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단지 설명서를 읽어가며 새로운 조작법을 익히기 싫고 낯선것이 익숙해지기까지에 필요한 시간과 불편함이 싫었던 것이다. 내가 터치폰을 유독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 있지 않겠는가. mp3에 한번 넣어놓은 곡은 1년이 지나야 바꿀까말까, 무작정 '싫다'라고 낙인찍은 작가의 작품은 한장도 읽어보지 않고-무작정 일본소설을 싫어하고, 어느 유명 여류작가를 이유없이 싫어한다. 왜지?-, 어느 장소이건 내가 먹고 마시는 것들은 비슷하거나 같은 맛이고, 핸드폰의 벨소리도 여간해서는 핸드폰을 살때 지정한 그 벨소리 그대로 핸드폰이 고장날때까지 몇년간 사용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것은, 어떠한 계기나 외부의 환경 등의 요인으로 인해 변화를 수용하게 되면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을뿐더러 인정하기 싫지만 무진 편하고 좋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과거에 보수노선을 고집했던 나를 탓하기도 한다. 진작 바꿀걸 하고. 좀 더 재밌게 살아가기 위해서 나는 보수를 보수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의 모든 보수성향과 안녕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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