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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두운 의자 안에서

필립 그로닝의 <위대한 침묵>

엄마가 이 영화를 전부터 너무 보고싶어하셨는데 CGV에서 3일가량 개봉한다는걸 아시고는 함께 보러가자 하셨다. 수도원에 관한 다큐멘터리란다. 다큐? 좋아요 좋아.

영화표를 받아든 순간 좀 아찔하더라. 세시간짜리 다큐라니. 아무튼 상영관에 들어가 앉았는데 머리 희끗희끗한 분들이 좌석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신 듯했다. 입구에서 '오셨어요'하면서 많이들모여 인사를 나누는걸 보니 아마 교회에서 단체로 영화관람을 온 모양인갑다.

영화는 봉쇄수도원의 삶에 관한 내용인데 이 영화를 찍기위해 감독이 16년을 기다렸다 한다. 영화 시작할때 경고문은 아니고 뭐라그래야 되나, 아무튼 '30분이라도 집중해서 이 영화를 보신다면 이 영화의 메세지를 이해할수있다' 라는 문장이 뜨는데 처음에는 이걸 보면서 좀 의아했다. 30분만이라도 집중하라니. 감독이 적었나? 그런데 30분, 한시간이 지나고 의자에서 몸을 밸밸 꼬게 되면서야 그 30분의 의미를 이해했다. <위대한 침묵>보다 더 위대한건 위대한 침묵을 깨는 사람들의 전화벨소리와 또각또각 문자질 소리, 그리고 심지어 코를 드르렁드르르렁 고는 님들도 몇명 있었다.

영화는 정말 말그대로 <위대한 침묵>이다. 수도자들이 묵언수행을 하고있기에 영화에서 말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으며 수도원 곳곳과 수도자들의 삶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엄마말씀에 의하면 어떤 조명도 쓰지 않고 촬영했다 하는데, 역시 햇빛에 기대어 촬영한 영상이라 그런지 화면이 굉장히 희뿌옇고 조악하다. 감독의 의도인것 같기도 하고. (이런 영상들이 한층 더 영화의 맛을 살리긴 했다.) 아무튼 나는 너무나 잔잔한 화면과 어우러지는 앞,옆,뒤의 코고는 소리, 문자질 하는소리, 붕붕하면서 문자오는소리를 감상하며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고, 정말 잠이 오더라. 눈한번 깜빡. 한장면 깜빡. 또 한번 깜빡. 한장면 깜빡. 계속 졸고있자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점심먹고 5교시 언어. 안잘수가 없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줘놓고, 자는 놈을 나쁜 놈 만들던 그때 그 기억. 안자려고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뜨던 그때와 흡사한 기분이 들었다. 중간에 오싹- 추워졌는데 관객들이 하도 자니까 상영관에 에어컨을 틀어버렸다. 그 덕에 잠을 좀 깨긴했지만 그 뒤로 다시 또 깜빡 깜빡. 

아.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 현대인은 단조로운 세시간도 죽을맛인데 저 사람들은 몇십년동안 어떻게 저걸 하고 있을까. 역시 현대는 너무 속도에 찌들어 있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졸았던 듯. 아무튼 영화자체는 괜찮다. 수도자들의 삶을 그린것도 훌륭하고-그들의 단순한 삶과 정신, 순수함. 소박한 기품- , 또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별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가짜 같은 인상을 주는 밤하늘도 너무 멋지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눈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가 했던 말은, 마음에 새겨 두고두고 꺼내 되뇌어 볼만한 인생의 진리이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고, 또 너무 길어서 나는 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엄마도 좀 졸았다는걸 시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