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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이 밤, 이 밤, 불타는 이 밤

 

 

 

 

 

향초켜는 밤을 좋아합니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여인들의 방에서 향초 하나 둘 쯤은 우습지 않게 활활 타고 있을 무렵에도 향초에는 전혀 관심도 흥미도 두지 않았거든요. 초는 초지 뭔 놈의 향초. 이따금 좋은 향초를 켜는 친구들 집에 놀러가면 공기 중에 은근하게 감도는 달짝지근함이 나의 섬세한 후각을 사로잡긴 했지만, 그래도 향초는 별 관심도 없었습니다. 아주 좋은 향초라며 하나에 4, 5만원을 호가하는 프랑스 무슨 브랜드의 향초 하나를 선물 받았을 때도 1년 넘게 처박아 둘 정도였으니까요. 곰곰 생각해보면 향초에 관심이 없었다기 보다는 향초를 켤 여유를 부릴 처지가 아니었단 말이 더 정확하겠네요.

 

 

어쨌든 작년부터는 줄곧 향초를 켭니다. 방 안의 불을 다 끄고 아른아른 하얀 벽에 일렁이는 불꽃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가만한 불꽃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왜 선인들이 그토록 명상할 때나 기도할 때 초를 찾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고요. 나는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 집안에 늘 커다란 초가 많았습니다. 야구방망이보다 더 큰 초도 있었으니까요. 종교마다 초를 사랑하지만, 천주교는 사순시기가 되면 알록달록한 네 가지 색상의 초들을 준비하고 시기마다 초 색을 달리해서 켭니다. 어릴 때는 그 초가 예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커서는 영 시큰둥 했던걸 보면 일단 우아한 보라색이 아닌 뭔가 싼티나는 보라색과 분홍의 조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겠죠. (로마 교황청에서는 아주 아름답고 우아하고 고결한 빛깔과 최고급 품질의 초를 켜겠지만!)

 

 

오늘도 문득 향초를 켜고는 잠깐 불을 끄고 하얀 벽을 보았습니다. 여자는 조명빨이라고들 하는데, 단촐한 초 하나를 켜놓으면 방안도 은근한 노란빛이 감도는 것이 바깥의 추위는 금세 잊어버리게 되요. 창문을 열면 기분좋게 시원한 밤공기와 함께 꽃향기가 훅 하고 들어올 것 같은 봄밤. 아, 써놓고보니 봄이 정말로 정말로 그립네요. 가벼운 비가 막 내린 직후의 봄밤 속을 거닐면 그렇게 시원하고 달큰할 수가 없는데.

 

 

일본 영화를 좋아해요. 일본 영화를 보면 내가 살고 있는 똑같은 풍경인데도 분홍색 필터를 하나 끼우고 찍은 것처럼 보드랍고 자세하게 느껴져서 좋아요. 아마 내가 아침마다 미친듯이 동동거리며 뛰어내려가는 비탈도, 일본 감독이 와서 찍으면 되게 예쁘장하고 서정적인 골목길로 변신하겠지요. 얼어죽을 추위지만은 예쁘고 하얗고 귀엽게 생긴 일본 여자애가 생머리를 나풀나풀 휘날리며 겨울 속을 또각또각 걷는, 뭐 그런거.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뭐 아무튼 겨울의 묘미라면 밤에 켜는 향초와 따듯한 계피차. 길거리에 파는 군것질거리 정도겠죠. 뭐냐. 그 며칠전에 퇴근하고 집에 오는데 골목입구에 타코야끼 트럭이 그날따라 유독 나를 유혹해서 한팩 사먹었지만 정말로 맛이 없었으며, 건너편에 붕어빵 트럭도 근사한 냄새가 무색하리만큼 맛이 없었어요. 오죽하면 한마리도 못먹고 버렸을까 내가요. 갑자기 오뎅이 몹시도 먹고 싶네요. 한번에 20개 정도 먹을 수 있는데.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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