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이상, <거울>
문득 위치에너지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높은 곳의 물방울이 낙하하며 물레방아를 돌립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러니까 위치에너지는 '기준점까지 이동할 때 할 수 있는 일의 양' 이라고 정의를 하더군요. 가까운 일주일내내 머릿 속에 '위치에너지'라는 단어가 둥실 떠다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벅벅감고는 채 덜 마른 머리를 차가운 공기 속에 디밀며 시작되는 50분 여의 출근시간. 높은 곳에 위치한 집으로부터 다다다 비탈을 내달려 버스를 타고, 다시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서는 지하철을 타고 또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없이 높은 건물로 올라갑니다. 나의 위치에너지는, 그러니까 정의에 따르자면 '위치에너지를 얻기위한' 일에 쓰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방울은 떨어지며 수레바퀴를 돌리고, 나는 아래로 위로 정신없이 오르내리며 내 위치를 돌리는거죠. 뱅뱅.
높은 건물에 아주 큰 창이 있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면 참 볼만합니다. 러시아의 모스크바보다 더 추운 겨울이 도시의 주름을 파고든다는데, 창밖의 세상은 날씨도 계절도 없는 듯 보입니다. 사람들은 온화하게 걷고 햇살은 부드러운 노란 빛깔로 거리를 비추죠. 흡사 모니터로 들여다보는 가상현실같아서 누군가 거리에 주저앉아 엉엉 운다고해도 하나도 궁금하지도, 마음이 아프지도 않을 노릇입니다. 저 사람, 많이 아프고 춥겠구나 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겠습니다.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면 가까이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의 창문 너머가 보입니다. 창문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걸보며 '아 저기에도 사람이 사는구만.' 새삼 신기합니다. 이 도시에는 흔히들 '마천루'라고 일컫는, 말 그대로 하늘에 닿아 스칠듯한 높은 건물들이 즐비합니다. 아래에서 위를 길게 올려다보면 그 안에 사람이 들어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는데, 커튼이 드리워진 걸 보고 비로소 건물 안에 있을 사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도 건물 안에 있으면서요.
하루종일 저들은 무엇을 할까, 를 고민해봅니다. 저쪽에서도 이쪽을 궁금해할까, 를 궁금해하다 나는 무엇을 할까, 로 옮겨갑니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니터를 들여다봅니다. 해가 지는줄도 잘 모르고 눈이 뻑뻑해 질 때까지 모니터를 줄곧 들여다봅니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날씨도 계절도 없는 듯 보이던 세상이 있습니다. 찬 바람에 얼얼한 두 볼을 느끼면서 다시 위치를 열심히 바꾸어가며 집으로 갑니다.
나의 위치에너지는 어쩌면 거울 속에서 또다른 거울을 관찰하는 일을 하고 있나보네요. 하루종일 저 너머를 쉼없이 들여다보지만, '거울 속을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어 섭섭한'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거울과 겨울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차갑고 고요하고 쓸쓸합니다. 우리는 거울 속에 사나봅니다. 아니, 우리 저마다는 거울, 거대한 거울인지도 모를 노릇입니다. 거울은 쉬이 깨지고 봄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입니다만
우리의 거울은, 겨울은 어쩌면 영원할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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