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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든든하게

 

 

 

 

 

새해를 딱 하루 남겨둔 날이었을 겁니다.

친구와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었고 도로가 꽤 많이 막혀서 가거니 서거니를 반복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리 급할것도 없고, 차창 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좋아 바깥에 가만 눈을 두며 문득

'만두먹고싶어.'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만두?'

'밖에서 파는거 말고 속이 꽉 차서 한입 베어 물어도 입안이 가득한 그런 만두.'

 


또 한해를 보내는 허한 심경을 꽉 찬 만두로 보상받으려는 심리인지 뭔지 갑자기 왠 만두타령인지는 모르겠으나,

친구는 흔쾌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날 잡아서 만두 한번 해먹을까?'

 


기회와 날은 잡기 나름.

어제가 바로 만두의 날이었어요.

만두 한 번 안 빚어본 처자 둘이 무슨 만두를 빚겠다고 판을 벌였는지, 어쨌거나 재료를 듬뿍 사두고 둘이 마주앉았습니다.

'오, 진짜 시작할 줄은 몰랐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인터넷에서 대충 뒤져본 자료들을 바탕으로 만두 속을 준비합니다. 부추를 쫑쫑 썰고, 두부를 물에 담궜다가 물기를 쪽 빼고, 고기에 이런저런 양념을 더해 밑간을 하고, 당면은 뜨거운 물에 잘 불렸다가 잘게 썰고... '오! 파는 것보다 더 맛있겠는데!' 간간이 자화자찬의 추임새도 빼먹지 않았고요. 만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고 복잡하고 번거로웠답니다. 그렇지만 나, 만두를 만드는 내내 웃고 있었네요. 어린 아이가 새로 산 크레파스를 손에 꼭 쥔 것 마냥. 이 모든 복잡하고 어렵고 번거로운 공정 끝에 소담하고 어여쁜 만두가 내 손끝에서 피어날테니까요.

 

 


*

 

 

 

요즘 나라는 사람이 들어있는 일상의 시간은 사실 좀 벅찹니다. 벅찬 구석이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염려하느라 자주 생각이 가빠오고, 가쁜 끝에 'if' 문장을 수백개나 만들어 내지요.

'내가 만일 ~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두 발은 현실 위를 꿈쩍없이 디디고 있는데, 디뎌야 하는데 자꾸 구름 위를 딛고 싶어하는 야속한 그 문장 말입니다.

 


만두 속을 많이 잡았는지 친구와 어림잡아 만두 여든 개를 꼬박 빚고나서, 만두국을 끓였습니다. '속이 꽉 차서 한입 베어 물어도 입안이 가득한 그런 만두'가 실하게 들어앉은 따듯한 만두국을 마주하니 텅빈 마음이 만두처럼 실해지는 기분이었달까요.

 


복잡하고 어렵고 번거로워도 차근차근 만두 속을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그래야만 손끝에서 예쁘게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것처럼, 지금 딛고 있는 순간순간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내야겠지요. 나의 이 모든 하루들이 잘 버무려져서 나를 든든하게, 튼튼하게 만들어 줄 것이니까.

 


(맛있는 만두를 많이 먹었으니,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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