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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두운 의자 안에서

<어린 왕자>_ 시간만이 할 수 있는 일

 

△ 엄마는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카톡으로 날아온 사진.

 

"창밖의 저 물고기, 바다처럼 아름답구나."

2016, Miss Ban, 단편시 <엄마가 부럽다>

 

 

 

 

 

시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

 

 

<어린 왕자>를 봤다. 이틀전 개봉이었던 셜록 시리즈를 진즉부터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린 왕자>는 이미 내용도 알고 새로울 것도 딱히 없어서 굳이 영화관에서 볼 이유가 없었지만 왠지 탐정 대신 왕자를 택했다. (신분에 끌린것인가! 풉) 아.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이제서야 어린 왕자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됐구나. 영화는 책 <어린 왕자>에 나왔던 서술자- 책에서는 6년전 만났던 어린왕자를 회상하지만, 영화에서는 조종사가 노인이 되어 그제야 지난 시절을 이야기한다- 인 조종사가 많이 늙어버린 모습을 비춘다. 마을에서 괴짜 취급을 받으며 변변한 이웃도 없는 그는, 언젠가는 다시 어린 왕자를 만나러 갈 생각으로 젊은 시절 몰던 비행기를 고치며 나날을 보낸다. 괴짜 노인의 옆집에 한 꼬마 아이가 이사를 온다. 아이를 이 동네 명문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한 아이 엄마의 계획. 엄마의 철저한 시간표 아래 기계처럼 바쁘게만 지내던 아이는, 금세 옆집의 괴짜 노인과 친구가 되어 모든 계획표를 치워버리고 진정한 행복에 반짝 눈을 뜨기 시작한다.

 

 

괴짜 노인은 꼬마에게 자신이 젊은 시절 만났던 어린 왕자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서 조금씩 들려준다. 끄적끄적 그린 그림과 글과 함께. 꼬마의 시선을 따라 원작을 다시금 읽게 되는데 그 한마디 한마디 문장들이, 이미 너무 익숙해져서 닳을대로 닳아버려 머릿 속에 공식처럼 박혀있는데도 어쩌면 그렇게 와 닿는지. 어쩌면 공식처럼 와박혀서 그 공식을 음미할 생각조차 못냈던건 아닐까. 많이 울었다.

 

 

'길들인다는 것.'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것을 각오하는 것.'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장미'

 

 

아이가 점점 계획대로 살지 않고 제멋대로 구는 것이 옆집 노인 때문임을 알아차린 엄마는 아이를 감금하고 철저하게 공부만 시키는데, 진학 시험을 앞둔 하루 전날, 옆집 할아버지가 쓰러진 것을 본 꼬마는 할아버지의 비행기를 타고 어린왕자를 만나러 간다. 어린왕자라면 할아버지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 (<스타워즈>에서도 처음 타는 주제에 이리저리 눌러보다 우주선을 프로페셔널 뺨치게 모는 소녀가 등장하며, <어린왕자>에서도 평생 공부만 했으면서 갑자기 비행기를 조종해서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 다른 행성으로 멋있게 비행하는 꼬마가 등장하니, 이쯤되면 나도 아무 비행기나 몰아볼까 싶다. 왠지 샌프란시스코까지 직항으로 몰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소녀가 도착한 다른 행성은, 할아버지가 이야기했던 행성과 전혀 다른 느낌이다. 오로지 건물만이 빽빽하고 다들 바쁘게 일만 한다. 소녀는 그 행성에서 어린 왕자를 발견하는데, 어린 왕자는 어릴 때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고 오로지 사장한테 짤릴까봐 벌벌 떨기만 하는 노동자로 전락해있다. (아, 우리들이여!) 그러나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어릴 때의 기억을 찾아가던 왕자는 마침내 다시 진짜 어린 왕자로 돌아온다.

 

 

 

*

 

 

 

영화가 끝나고 다시 천천히 <어린 왕자>를 오롯이 음미하고 싶어서 책방에 들렀다. 왜 나는 생텍쥐베리가 영어로 소설을 썼을거라고 생각했을까. 돌아오는 길에 영어 원서를 사고 나서야 알았다. 생텍쥐베리는 프랑스 사람이었고, 이름도 생텍쥐베리가 아니고 saint 가 앞에 붙어서 뭐 어쩌구저쩌구 빨리 읽다보니 생텍쥐베리가 된 걸. 나 원 참. 그나저나 생택쥐베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정말로 어린 왕자 같았던 그의 죽음. 그는 비행기를 타고 어디까지 날아간걸까. 저 멀리 두고온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 단 한 송이 장미를 지키러 간걸까.

 

 

"You become responsible forever for what you've tamed. You're responsible for your rose."

 

 

우리는 어느새 길들이는 것도, 길들여지는 것도 두려워하는 어른이 되었다.

우리 모두 어린 왕자를 잃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