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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두운 의자 안에서

<앙 : 단팥인생 이야기>_수미사쿠라

 

△ 이 사진 찍은지 5년도 넘었을게다. 그래도 벚꽃.

 

 

 

 

이틀내내 방에서 나가지 않고 있다. 오늘 친구가 춘천에서 서울로 놀러오기로 했는데 어쩐 일인지 하루종일 연락이 되지 않아, 오전에는 아직 자는건가 싶었지만 오후가 되니 슬금 걱정이 되기 시작하다 나중에는 걱정을 걱정하기로 마음먹었다. 화내지 않을테니 그저 무사하기만 하렴. 핸드폰을 잃어 버린거라면 얼른 찾았으면 좋겠어.

 

 

저녁이 내려 오랜만에 집에서 영화 한 편을 봤다. (방에 불을 끄고 보면 될텐데 세상이 어두워져서야 영화를 트는건 무슨 심리일까.) 올 가을 개봉한 <앙>. 영화관에서 보려고 두어차례 예매를 했었는데 그때마다 일이 생겨 결국은 보지 못했다. 영화도 인기가 없어 재빨리 막을 내렸는데, 팥 삶는 예고편에 진즉 마음을 뺏기어 꼭 봐야지, 마음에 꼭꼭 담아둔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는 무난하게 흘러간다. 벚꽃이 예쁘게도 핀 봄날, 작은 도리야끼 가게에 할머니가 빼꼼 고개를 디민다.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사장은 노쇠한 할머니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몇 차례나 거절하지만, 할머니가 직접 만든 샘플 팥맛에 반해 할머니를 고용한다. (역시 샘플의 위력이란!) 할머니가 등장하자마자, 파리만 날리던 도리야끼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다들 팥맛이 달라졌다며 극찬하며 줄을 서서 사가지만 이대로 끝나면 영화가 안되므로 이쯤되어 할머니의 비밀이 등장한다. 할머니가 나병을 앓았었던 것. 그 소문이 퍼지자마자 도리야끼 가게는 다시 파리의 가게로 전락. 손님이 없어지고 사장은 할머니를 해고한다. 양심의 가책에 술을 겁나 들이붓다가 가게 단골인 소녀의 손에 이끌려 나병 환자촌에 살고있는 할머니를 방문, 할머니의 말에 마음 한켠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에서 새로운 도리야끼 레시피를 얻는다. (역시 남자는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남자라면 어린 여자건, 늙은 여자건 아무튼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다 잘 되라고 하는 소리고 듣다보면 나중에 잘 되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니까. 그러니까 제발 말 좀 들어라. 이놈의 종자들아!) 사장이 다시 의욕충전해서 새로운 도리야끼 좀 만들어보려 하는데, 가게 주인이 리모델링 후 오코노미야끼도 같이 팔고 싶다며 집주 권리를 펼치는 바람에... 사장은 심란해져서 다시 할머니를 찾아가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없다. 할머니의 무덤 대신 벚꽃나무 한 그루가 심겨있다. 끝.

 

 

영화의 시작과 끝에 가득 펼쳐지는 벚꽃이 참 아름답지만, 사실 영화는 너무 잔잔하고 무던해서 나같이 툭하면 우는 친구도 울지 않았다.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미와 느릿한 호흡으로 흘러가는 영화이고, 나는 대부분의 일본 영화를 참 좋아하지만 전개방식이 새롭지 않아서 마음에 닿는 구석이 별로 없었던 영화. 전체의 흐름보다는 장면장면, 할머니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한다면 좋다. 할머니의 인상적인 한 마디.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이 시작이었지."

 

 

올봄에는 진해를 가서 벚꽃을 좀 봐야겠다. 그 유명하다는 벚꽃 빵도, 벚꽃 마카롱도, 벚꽃 초콜렛도 잔뜩 사야지. 빨리 봄이 왔으면. 꽃 파워가 떨어진 나는 이렇게 오늘이 심지어 영상 9도라는데도, 겨울 핑계를 대고 방안에서 꼼짝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