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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두운 의자 안에서

<괴물의 아이>_ 가슴 속의 어둠을 견디는 법

 

△ 퇴근 후 영화 한 편 볼 수 있는 여유 정도라면 더이상 잡다한 것 바라지 않습니다

 

 

 

 

어제 극장에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찍고 오늘 <괴물의 아이>를 보며, 내 나름 호소다 마모루 특별전을 마련하고 싶었으나 아쉽게 <시달소>의 극장판은 놓친 관계로. 술이 문제다. (아아! 미래에서 기다릴게를 꽉찬 스크린으로 봤어야 하는데! 치아키!)

 

 

 

*

 

 

 

누구나 마음속에 어둠을 키운다. 무시무시한 살의와 기괴함, 두려움과 허영, 온갖 것들이 뒤범벅되어 날마다 나를 갉아먹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저마다의 인간은 마음 속에 어둠을 가지고 있다. <괴물의 아이>가 보여주는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세계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매일 발디디며 살아가는 인간 세계. 그리고 또 하나는 인간 세계와 이어져 있지만 보통 인간은 결코 찾기 어려운 짐승들이 사는 세계. 이 짐승들은 마음 속에 어둠이 없는 순수한 존재들로,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짐승들의 세계에 인간이 발디딜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어둠 때문이다. 어둠은 모든 것을 좀먹고 파괴하기 때문에 신들의 세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주인공 렌(큐타)는 우연히 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그들의 세계에서 제멋대로이고 고집불통인 괴물을 스승으로 삼게 된다. 스승과 제자는 연신 티격태격하지만 서로의 좋은 짝이 되어준다. 부모와 스승없이 혼자 자라 척박하게 강해질 수 밖에 없었던 괴물 스승과, 역시 가족의 붕괴로 상처입은 소년의 시간이 보듬어진다. 뭐 여기까지라면 그렇고 그런 스토리의 전개겠지만, <괴물의 아이>가 좋았던 이유는 결국 주인공은 이 단단하고 따스한 시간을 바탕으로 '내 자신과의 싸움'을 용감하게 선택했고, 이를 해냈다는 것에 있다. 어두운 내 자아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소년.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품었던 어둠은 소년을 따라다니며 함께 성장한다. 치유되지 않은 가족에 대한 아픔이 모른척 한다고 사라질리 없다. 어둠이 문득 문득 튀어나와 소년을 쥐고 흔들때마다 소년은 두려워 떨었다. 그러나 마침내 소년은 용기를 내 자기 안의 깊숙한 어둠을 들여다보기로 선택한다. 얼마전 읽은 <가짜 팔로 하는 포옹>에서 피존씨가 얘기했던 것처럼 내 안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면 무엇이 있을지 두려워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주방 싱크대에다 먹을 걸 넣어두고 그걸 까맣게 잊고 있다가 1년 후에야 갑자기 생각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얼마나 썩어 있을까요. 문을 열면 바퀴벌레와 온갖 벌레들이 음식물을 뜯어먹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음식물이 이상한 생명체로 변한 것은 아닐까요. 저는 문을 열기가 두려웠습니다. 싱크대 문을 열 수 없는 것처럼 저도 제 안을 들여다보기가 겁이 났습니다. (p.112)

 

 

소년의 곁에는 소녀가 있다.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모비딕(백경)>이라는 책이다. 소년이 소녀를 처음 만난 도서관에서, 9년만에 처음 나와본 인간 세상에서, 소년은 서가에 꽂힌 <모비딕>을 빼들고 마침 곁에 서있던 소녀에게 묻는다. 무슨 한자니? 고래 경.

 

 

소녀는 소년과 자주 만나 글을 가르치고 책을 함께 읽으며 '이 책은 어쩌면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이야기야' 라는 말을 한다. 소년은 그 말 뜻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소년의 가슴 속에 들어있던 어둠이 소년을 흔들고, 급기야 마침내는 고래의 모습으로 소년을 덮쳐 올 때, 소년이 죽음의 각오로 고래 앞에 마주섰을 때, 그 때 소년이 스승과 나누었던 마음과 시간이 가슴속에 검이 되어 고래를 무찌른다. 소년에게 몇 번이나 어둠이 덮쳐올 때도 소녀가 준 실팔찌가 가까스로 소년을 구한다. (그 실팔찌는 소녀가 마음 속의 어둠을 이기기 위해, 좋아하는 책에서 뜯은 책갈피 실로 만든 것.)

 

 

그러니까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어둠을 정면돌파 하는 것은, 분명히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지만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가슴 속의 어둠을 품고 자라게한 오랜 시간이 있는 것처럼, 그 어둠을 무찌를 수 있는 단단하고 뜨거운 가슴 속의 검도 오랜 시간이 있어야 한다. 어둠은 내 안에서 혼자 자라지만, 그 검은 결코 혼자 자라지 않는다. 나를 보살피고 키워주는 든든한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그 마음을 사랑이라 이름붙인다.

 

 

영화의 엔딩에 노래가 나오는데, 가사를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내 안의 세계에서만 들리는 총성' 이라는 가사가 있었다. 어둠은 아무도 모른다. 내 안의 세계에서만 들리는 총성이다. 그 총성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그 총성을 들으며 저 세상으로 떠났다. 남들에게 그 전쟁을 멈춰달라 할 수 없다. 그 전쟁은 나만이 끝낼 수 있다. 그러나 끝낼 수 있는 힘은,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온다. 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