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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12월 6일 : 춘천가는 기차

 

△ 춘천 청평사에는 얼음이 꽝꽝 내렸더라

 

 

 

 

무채. 모든 것은 무채에서 시작되었다. 며칠전 점심시간, 퇴사한 동료가 남기고 간 무채김치를 먹었다. 이걸 다 먹으면 이제 누가 싸오지. 내가 만들어 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으로 곰곰 무채 레시피를 생각하다가 올 봄, 춘천 - 정확히는 춘천도 아니었거만. 춘천역에서 모여 트럭을 타고 한참이나 더 달려야 하는 어느 산골 - 에서 언니가 만들어줬던 무채김치가 생각나서 레시피를 물었다. 너무 맛있어서 그 비법을 알아내겠다며, 슥슥 아무렇게나 만드는 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몇 번이나 봤건만 뭔가 빠뜨린게 있나 싶어 언니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회사에서 무채를 먹는데 언니가 해준 맛있는 무채가 생각이 나서 식초랑 설탕만 넣었나? 그 때?

콧기름도 넣고. 그래서 맛있는거야.

흐흐흐흐 싫어.

 

 

무를 가늘게 채 썰어서 식초, 설탕, 고춧가루에 슬슬 버무리면 끝. 집에 가는 길에 실한 무를 오백원에 파는 걸 봤다. 손이 시리고 무거울 것 같아 사지 않았는데 무채가 계속 머리에 남았다. 춘천에서 먹었던 무채. 그러다가 춘천. 어, 그래 춘천. 이상하게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저 먼 외국은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덥석덥석 날아가서 사람들과 덥석덥석 어울리면서, 이 나라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혼자 다니는 것도 마뜩찮다. 춘천이라. 5년전에 같이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녀석에게 연락을 했다.

 

 

야.

응.

나 춘천가려고.

와.

진짜?

어.

 

 

연락처도 없어 4, 5년만에 불쑥 춘천가겠다며 페이스북 메세지 하나 뾰로롱 띄운 내게, 녀석이 흔쾌히 쿨하게 오라고 했다. 단 세마디. 응와어. 이쯤되면 니가 보살이냐 내가 보살이냐. 같이 일한게 고작 반년 남짓인데 그동안 연락도 한 번 없다가 근 5년만에 연락해서 간다는 나도, 그런 내게 오라고 하는 너도. 나는 이쯤되면 나의 인간성을 의심한다. 내가 이토록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었단 말인가. 원래도 좋은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괜찮은 인간성의 소유자라고, 그래서 이렇게 오랜만에 불쑥 연락해도 따뜻하게 맞아주는거라고 말이다.

 

 

춘천가는 2층 열차에 올라타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를 들었다. 이 노래는 김현철이 춘천에 한번도 안가보고 만든 노래라고 했다. 아주 오래전에 TV에 나와 그가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웃었다.  요즘 붙들고 있는 책을 읽었다. 요즘, 책을 읽는다.

 

 

니가 5년전에 그랬잖아, 춘천 놀러오면 닭갈비 사준다고!

 

 

5년전 약속을 팔아 닭갈비를 먹고, 늘 하듯이 지방 유명 빵집을 검색해 찾아가서 또 먹고, 소양강 근처를 거닐었다.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만난 얼굴이 이제는 제법 어엿한 직장인 티가 난다. 차를 끌고, 공사를 따러 다니고, 계약 하나에 마진이 얼마나 남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구나 응응. 

 

 

춘천은 날씨가 좋았고, 공기가 맑았고, 여기저기서 맛있거나 맛없는 닭갈비를 팔고 있었다. 닭갈비는 닭다리를 얇게 펴서 만든 것이라는걸 처음 알았다. 소양강에서 배를 탔다. 점심때는 막국수를 먹고 저녁에는 맛있는 막국수를 먹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요즘 붙들고 있는 책을 마저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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