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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12월 3일 : 나에게 첫눈

 

△ ahn 作

 

 

 

겨울은 도통 날씨를 가늠할 수 없다. 여름날이면 방안에 드리우는 빛만으로도 '비가 오는 건가?' 짐작을 하고도 남는데, 겨울은 온통 어두운데다 해까지 늦게뜨니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창문을  굳이 열어 찬바람 영접을 하지 않고서는 결코 모를일. 샤워를 하고 욕실 문을 열었는데 '어머!' 하고 내 입에서 외마디 감탄이 흘러나왔다. - 나도 이제 놀라운 상황에서 '어머'라고 할 정도로 서울깍쟁이가 되버린건가. 그렇단 말인가! 이야말로 어머같은 사실이다. - 눈송이가 펑펑 날리고 있었다. 첫눈이랍시고 조금씩 찔끔거리는 눈송이들은 영 달갑지 않더니, 이렇게 펑펑 내리니 마음이 문득 즐겁고 달뜬다. 나에겐 이게 첫눈! 욕실 창문 너머로 너울너울 춤추는 커다란 눈송이들을 바라보노라니, 출근길이 걱정이긴하다만 괜히 콧노래가 나오고 눈올때만 부르는 주제가가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왜 아름다운 것들 앞에선 한없이 무력해질까. 현관을 나서 복도에 난 창으로 춤추는 눈송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건물 입구 앞에 문득 서서도 눈송이를 바라보느라 우산 생각을 못했다. 아, 이 아름다운 눈송이도 피해야 하는거였지. 우산이 필요한거였지. 다시 내 방으로 올라가 우산을 들고 내려왔다. 눈송이가 어지럽게 날리고 그 속을 걷는데 힘겨웠다. 우산에 긴 머리카락이 엉겨 몇 가닥을 끊어버렸고 급기야는 꽤 많은 머리카락이 걸려 거리에 우뚝서서 씨름해야 했다. 이게 뭐람.

 

 

패딩은 다 젖었고 머리는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이 귀찮고 성가심을 아름다움이 아무렇지 않게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버린다.

 

 

아,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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