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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떤 낱말들의 모임

서민의 <서민적 글쓰기>_ 귀족적 글쓰기는 서민처럼!

 

오랜만에 지하철 책 읽기.

지하철 초록바닥을 배경으로 한 책사진이 간지인 시대가 오길 소망합니다.

 

 

 

 

'조금씩, 틈틈이' 읽기로 결심한지가 언제던가. 마지막으로 올린 서평의 날짜가 무색하다. 굳이 핑계를 대보자면 그 사이에 올해 서점가를 강타한 <미움받을 용기>를 읽었고, 찔끔거리며 이 책 저 책을 들추었다 정도. 그동안 제대로 완독을 마친 책이 없는데 서민 교수님의 <서민적 글쓰기>를 오늘로 마쳤다.

 

 

내 인생의 책 세 권을 꼽으라면 가장 많이 운 책은 <플란다스의 개>, 가장 빨리 읽고 가장 울림이 컸던 책 (비밀이다, 미래 배우자와만 공유할 계획!), 그리고 가장 많이 웃은 책 <서민적 글쓰기>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굳이 책 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그토록 크게 웃은 적이 없는데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피식 터져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다. 서민 교수 특유의 위트와 비꼬기가 곳곳에 잘 녹아있는데, 특히 경향신문에 실었던 칼럼 하나를 읽고는 온 방이 떠나가라 웃다가 눈물이 고였다. 읽어도 읽어도 명문이다. (칼럼은 여기 : http://seomin.khan.kr/195)

 

 

 

좋은 책은 일단 재미있다

 

 

글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면서도 여러 핑계를 대어 책을 '열심히 안' 읽기에 바쁜 내가, 유독 서민 교수의 책만큼은 줄줄 다 챙겨보게 된다. 왜일까? 웃기다. 직장인들은 내일 출근을 염려해 미리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일요일밤 TV앞에 앉아 개콘을 본다. 왜? 웃기니까. 서민 교수의 지난 책들도 다 웃으며 봤지만 이 책은 유독 재미있다. 페이지마다 웃으며 이런저런 인텍스를 붙여두다가 나중엔 하도 많이 웃어서 그만 표시를 포기해버렸다. 일단 웃기고, 웃기면서도 내용이 고급지다. 김밥천국에 들어가 돈까스김밥 하나를 시켰는데, 그 돈까스를 씹자마자 스테이크 뺨다구를 후려갈기는 풍부한 육즙이 질질 흐르는 식이랄까. 부담없으면서도 이런저런 주제들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게 해준다. 핑크 좌파인 저자의 특성상 정치 이야기가 많은데 누가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정치 이야기를 해준다면 나 진짜 열심히 관심가질 자신있다.

 

 

 

서민적 글쓰기를 해야 귀족처럼 쓴다

 

 

이미 공부 잘 하는 사람이 '공부 잘 하는 법'을 쓰면 잘 못쓴다. 못하는 사람의 고충을 모른다. '교과서만 보고 하면 되는데 그게 왜 안되죠?' 라는 둥그런 눈동자로 공부 못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책 뒷표지를 보면 '서른에 시작해서 마흔에 완성한' 이라는 카피가 쓰여 있는데, 그 서른의 시작이 <소설 마태우스>다. 서민교수는 그가 이미 다른 저서에서도 여러번 언급한 '쓰레기' <소설 마태우스>를 시작으로 눈물나는 글쓰기 지옥훈련 끝에 글을 잘 쓰게 된 양반이다. 그의 저서를 여러권 읽어온 나로써는 이쯤되면 '얼마나 쓰레기인가'를 궁금해할 수 밖에 없는데, 중고서점을 뒤져보니 단돈 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조만간 사 볼 생각이다!)

 

 

서민적 글쓰기에는 왕도가 있을까? 책을 읽다보면 요래저래 써보라는 깨알 팁이 실려있긴 하지만, 일단 이것은 다 된 밥에 '양념 어떻게 치라' 정도의 팁이고, 역시 그가 강조하는 것도 '좋은 재료를 갖추는 것'이다. 일단 많이 읽고 많이 써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많이 읽고 많이 쓰는 행위의 저변에는 역시 드글드글한 욕망, 그러니까 '정말 잘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깔려있어야 한다. 잘 쓰고 싶다는 마음조차 억지로 떠안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p.11)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글을 잘 쓸 의지가 얼마나 있냐는 것이다. (중략) 사람들 대부분이 이렇게 글쓰기의 꿈을 접는다. 한 달 정도는 의욕적으로 글을 써도, 몇 년씩 그 열정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왜일까? 글쓰기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었던 나와 달리, 그들에게는 글을 잘 써야한다는 절실함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한다. 여자친구는 사귀다 헤어지면 끝이지만, 글쓰기 실력은 한번 갖춰 놓으면 평생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따듯한 사람이 따듯한 말을 한다는데

 

 

아무리 재미있고 좋은 책이라도 그 내용이 살벌하다면 손이 갈까. 나는 원래부터 추운걸 원체 싫어해서 따듯한 것에 하염없이 끌린다. 서민 교수의 책은 따듯하다. 사소한 삶의 조각들에 대한 애정이 담뿍 느껴진다. 누구를 비꼬고 돌려까기하는 그 시선도 밑바닥은 따끈따끈 온돌이다. 따듯한 사람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아내 이야기도 하고, 정치 이야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살아보자 이야기도 하고, 본인의 부끄러운 과거도 꺼낸다. 다같이 따듯하게 잘 살아보자는 마음이 담뿍 느껴져서 좋다. 이 추운 세상, 따듯한 사람이 따듯한 말을 좀 하겠단다. 감사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러니까 미래 남편에게 받아보고 싶은 편지라 커다란 포스트잇을 꼭 붙여놓은 페이지를 소개하며 <서민적 글쓰기>서평을 마친다. (저자는 아내에게 자주 편지를 쓴다고 한다. 훌륭한 남편이로소이다!)

 

 

 

(p. 73) ...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제 의지가 강철만큼 단단해서였지요. 당신을 처음 만난 순간에 그 두꺼운 강철이 단숨에 녹아내리는 걸 느꼈습니다. 당신의 엄청난 미모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런 것이었어요. 게다가 당신과 얘기하는 것도 매우 재미있었죠.약간 무섭기는 했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간 유지해온 제 삶이 바뀌는 걸 원하지 않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당신 같은 여자를 다시 못 만날 거라는 것도 잘 알았기 때문이지요..(중략) 이런 날 돈을 벌겠다며 집에 없어서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여보, 당신은 알고 있죠. 제가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는 걸. 늘 고맙고, 사랑합니다.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아내가 저렇게 예쁜데 왜 당신이랑 계속 살고 있냐고.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얼굴보다 중요한 건, 편지라고.

 

 

 

 

(*) 서민 교수님, 다음 책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