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alon de alone/어떤 낱말들의 모임

안선희의 <어떤 결혼식>_ 크지만 작은 것과 작지만 큰 것

 

△ 수박씨 박힌 것 처럼 책 읽는 사람들이 도드라지게 눈에 띈다

 

 

 

책도 안 읽고 급한 마음에 쓰는 서평. 한 주에 책 두 권 읽기 스코어는 어떻게 되었나. 첫 주는 무난하게 마치는 듯 했으나, 두 셋째주에는 업무 때문에 마음이 바빠 실패. 핑계를 대자면 <미움받을 용기>는 1/5가량, <노빈손과 위험한 기생충 연구소>도 1/5가량 남았다.

 

 

 

나를 위한 거잖아 : 요란하고 허무한  

 

 

인생에서 가장 오래만난, 13년지기 친구가 다가오는 가을에 결혼을 한다. 새초롬한 - 영어듣기를 하며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첫인상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너도 결혼이란걸 하는구나. 늘 '나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 고 선언하던 나를 두고 '꼭 저런애들이 제일 먼저 시집간다'며 놀려댔지만, 정말로 나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떠나보내고 있다. 그때마다 '사위가 갖고 싶네에에에' 엄마의 잔소리가 친구를 떠나보낸 빈 마음을 채우지만.

 

 

'반. 너라면 어떻게 결혼할꺼야?'

 

 

늘 뭔가 특별하고 독특할 것 같았는지, 친구가 나에게 결혼을 어떻게 할껀지 물어본다. 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것 같아. 몇 달전에 나눈 이야기라, 원빈과 이나영이 강원도 보리밭을 걷기도 전이기도 하고. 어쨌든 나는 일반적인 결혼식은 하기 싫었다. 홀로 머릿속에 이런 건 어떨까, 이런 건 어떨까 어설프지만 얼기설기 짜 둔 그림도 있고. 무조건 남들과 다르고 싶고 튀고 싶어서 '일반적인 결혼식'을 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다. 친구들의 결혼식장에 가면 늘 허무했다. 아니, 고작 이삼십분 동안 이걸 하려고 돈 수천을 때려부었다고? 주례사는 잘 안들리지, 벌써 밥 먹으러간 친구들도 있지, 식에 집중하는 대신 옆에 앉은 끼리끼리 근황을 나누거나 농담 따먹기나 하는 수준. 도대체 누가 결혼식에 집중을 하는걸까? 식을 마친 신랑 혹은 신부에게 물어보면 '아몰랑'이란 대답이 돌아온다. 여기보고 저기보고 사진찍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한복으로 갈아입고 손님들 밥먹는데 얼굴 빼뚜룸 비추고 나면 그게 결혼식인거다. 뒤를 이어 후다닥 그 다음 커플의 결혼식이 진행된다.

 

 

왜 그래야 되는걸까?

 

 

나는 꼭 결혼을 하겠다는 입장도,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아니지만, '결혼'이란 키워드에 대해서 만큼은 시간을 들여 깊고 진지하길 원하는 사람이다. 시간과 상황에 쫓기다보면 물론 편하고 쉬운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그 편리성은 돈이 해결해주는거고. 그렇지만 신랑신부도, 하객들도 결혼식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기대도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참 놀랍고 아쉬운 부분. '우리 부부예요' 잠깐 보여주려고 수천을 쏟아붓는건 아니잖은가. 일반 식장에서 일반적인 형식을 택하더라도, 그 컨텐츠만큼은 조금만 신경쓴다면 알차게 꾸밀 수 있을텐데 매번 아쉽다. 물론 나의 사랑하는 친구도 일반적인 결혼식을 진행할 것이다. 어쩔 수 없으므로.

 

 

 

크지만 작은 것과 작지만 큰 것

 

 

회사에 <어떤 결혼식>도서를 신청했다. 내가 신청한 책을 두고 사람들이 '결혼하고 싶은가봐?' 라고 중얼거렸다. 결혼을 당장 하고 싶다기보다는, 결혼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왜냐면 나도 결혼 적령기라는 것에 도달했으니까. 아버지 이름 밑으로 들어둔 보험이 나만 쏙 빠졌기에 어머니가 알아봤더니, 자녀 중에 결혼적령기에 도달한 여자는 자동으로 빠진단다. 어머니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디밀며 나의 미혼을 증명해야했고. 끌끌. 거참. 결혼적령기라 가족에서 아웃되다니 서럽도다.

 

 

 

 

 

'결혼하자'는 말이 '너는 얼마짜리 집을 해올꺼냐' '스드메는 어디로 할까요' 로 직행되기 보다는, '너는 어떤 결혼식을 하고 싶니' 로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지 못했지만 <어떤 결혼식>의 워크샵에 다녀왔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 나만 아니었나? -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결혼 언제 하세요?' 라는 질문에 '저는 가상의 남자친구와 함께 왔어요' 라는 대답을 했더니, 다들 '아니 어떻게 여길 오실 생각을 했어요?' 라며 놀란 토끼눈.

 

 

참석한 커플들이 참 이뻐보인다. 앞으로 함께할 과정에 대한 밑그림을 기꺼이 같이 그리겠다는거니까. <어떤 결혼식>은 그들만의 의미있는 결혼식을 치룬 일곱쌍의 커플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커플도 참석해 실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참석자 중 누군가가 '직접 결혼 준비를 하면 좋나요?' 질문을 던졌는데 남자분의 대답이 인상적. '결혼식을 직접 준비하면, 어설퍼도 어느 부분이 좋았고 어느 부분이 아쉬었다는 감정 공유가 되어서 좋아요. 전 결혼식을 한 번 더 하면 진짜 더 잘할 자신이 있어요!'

 

 

놀이터에서 결혼한 커플, 미술관을 아예 통째로 빌려 사진전 형식으로 진행한 커플, 별다른 식없이 살던 집을 툭 공개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놀도록 만든 결혼식... 책에는 다양한 결혼식이 등장한다. 워크샵에서 같은 테이블의 사람들끼리 의견을 나누면서도 참 재미있는 결혼식이 많았다. 내 옆자리의 여성분은 등산을 좋아해 산에서 결혼하고 싶다고 했고, 디자이너 커플은 클럽에서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니 토크쇼 형식으로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입담이 좋은 누군가가 사회를 봐주고, 신랑과 신부에 대해서 하객들이 좀 알고 함께 웃었으면 좋겠다고. 둘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언제 결혼을 결심했는지... 중간중간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 분들을 초청해 음악도 좀 듣고. 물론 아버지의 색소폰 연주도 들어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을 어쩔 수 있게 만드는 누군가들은 반드시 있다. 원빈과 이나영의 보리밭 결혼식 덕분에, 아마 많은 커플들이 앞으로 갈대나 보리를 즈려밟으며 결혼하겠지만 그 전에 각자의 의미를 찾았으면 좋겠다. 결혼식은 전적으로 나를 위한거니까. 혼자였던 내가 누군가와 둘이 되는, 인셍에서 손에 꼽을 벅찬 순간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