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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떤 낱말들의 모임

안도현 <잡문>_ 그늘의 두께, 라니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나는 저 유명한 시 때문에 안도현 시인을 싫어한다. 줄곧 싫어해왔다. 학창시절 저 시를 언제 배웠는지는 모르겠는데 - 시를 '배운다는' 것 자체도 짜증나는 일이고. 시는 그냥 읽고 가슴으로 느끼면 그만인것을!  - 일단 '연탄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너무 잘 알겠는데 허연 연탄재가 고루하게 느껴졌다. 우리집이 연탄을 땠던가? 그랬던 기억이 있던가? 그렇다고 한들 연탄재가 굳이 내 마음을 파고들 이유는 없었다. 굳이 요샛말로 바꾸면 핫팩 정도 될텐데 '다 쓴 핫팩 함부로 버리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정도가 아닐까. 아니 어떻게 제 몸을 새하얗게 불태운 연탄이랑 핫팩을 비교를 하느냐, 는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핫팩도 제 역할을 다하면 온몸이 차갑게 굳어 마비된 채로 죽는다. 아무튼. 연탄재도 핫팩도 맘에 들지 않을뿐더러 단어마다 행마다 빼곡 달린 시 해석도 맘에 들지 않았다. 시인의 사물을 보는 어쩌고 저쩌고... 그럼에도 저 시는 간결하고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겨울 어귀에서 하얀 연탄을 마주할 때마다 퍼뜩 저 시가 떠올랐다. 그것도 싫었다. 연탄을 볼 때마다 공식처럼 저 시를 떠올리는 것!

 

 

아무튼 짧은 한 편의 시에서 출발해 안도현 시인을 덮어놓고 곧잘 싫어해왔다. 다른 시는 읽어보지도 않았다. 간혹 마주한 기억도 있는 것 같은데 눈길도 주지않고 덮어버렸다. 연탄재의 바리에이션이겠지, 고루해 칫. 모두가 위대한 시인이라고 말해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는 내게 있으니까 흥 칫 뿡. 안도현 시인의 <잡문>이라는 책도 익히 봐왔다. 서점에서 간간이 마주쳤지만 책장을 들출 생각도 안했다. 연탄재 모음집이겠지 흥 칫 뿡. 그러다가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자료 조사때문에 서점을 휘 둘러봐도 눈에 들어오는 책이 없었다. 요즘 윤성근 저자의 <내가 사랑한 첫문장>에 꽂혀 있는데 - 올해도 몇 권 안 읽었지만 단연 올해 최고의 책이다 내게- 그의 총각작(왜 처녀작만 있고 총각작은 없냐!)이 궁금했다. <내가 사랑한 첫문장>을 읽는 내내 너무나 재미있어서, 오죽하면 얼른 퇴근하고 집에 가서 책을 보고 싶다고 생각할 지경이었기에. 책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아무튼 그의 총각작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좀 읽어보고는 딱히 눈에 드는 책이 없다가 <잡문>이 보여, 예의 그 흥 칫 뿡 자세로 표지를 넘겼는데 맙소사. 지끈지끈 허리가 아픈 것도, 오래 서있어서 발이 아픈 것도 다 잊고 문장에 빠져들었다. 우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이런 표현을 하지? 우와. 우와. 이 문장도 갖고 싶고 저 문장도 갖고 싶다. 우와.  왜 이렇게 간결한 문장들로만 구상을 했나 살펴보니, 시인은 핸드폰을 없애고 40자 트위터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는 중이라 밝히고 있었다. 40자의 제약이 오히려 본인을 더 자유롭게 한다고. 무척이나 아름다운 시인의 시선을 갖고 싶어 결국에는 책 한권을 집어 들고 나왔다. 연탄재에서 출발해 그늘에 이르러서야, 그러니 긴긴 겨울을 나고 무성한 여름에 다다라서야 나는 겨우 시인을 이해했다. 나는 이제 안도현 시인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