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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떤 낱말들의 모임

서민의 <집 나간 책>_ 집 나간 정신이여, 돌아오소서 (2/100)

 

△ 어릴때부터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다는 서민 교수님을 위해, 조인성의 기럭지를 잠시 빌렸다. (아... 안 어울린다)

 

 

 

다 읽었다!

 

 

고향집 골방에서 책을 붙잡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남동생이 '오 문학 소녀' 라며 한마디 하고 지나간다. 어제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붙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는 함께 사는 친구도 '오 지성인' 이라며 실시간 리플을 달아주지 않던가. 그러고보면 책 읽는 풍경이 참 생경하긴 생경한갑다.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을때는 그 누구도 '오 기계 소녀' 라던가 '오 최첨단 테크놀로지시대의 수혜자' 라고 해주지 않더니,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바꿔잡자마자 다들 한마디씩하고 지나가니 말이다.

 

 

계획없이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어, 기차에서 시간때울 요량으로 스마트폰에 몇 개의 동영상을 챙겨 넣으려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든가 <비정상회담>, <냉장고를 부탁해>- 예닐곱의 장정들을 한꺼번에 데리고 가는 것보다는, 한 남자에 집중하는 편이 낫겠지 싶어 서민 교수의 책을 집어들었다. 물론 무게는 한 남자가 훨씬 더 무거워서 이동내내 좀 번거로웠지만. '읽으려면 재미있는 책부터 시작하라'는 조언의 저자인만큼 재미있게 썼겠지 라는 믿음도 한 몫했고. 혹여나 재미없더라도 기차니까 도망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읽으리라는 계산도 있었다. 기차 출발과 함께 시작!

 

 

타고난 서평가

 

 

"다른 이로 하여금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글을 좋은 서평이라고 한다면, 서민은 타고난 서평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뒷표지 추천사 중)

 

 

그저께 서민 교수의 책을 좀 읽다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소개된 책을 사오지 않았던가. 피자가 삼일내내 먹고 싶어도 귀찮아서 못 시키고 있는 나의 육신을 일으켜 책까지 사러가게 한 대단한 서평가다. 나는 서평을 쓰려하면 왠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어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면 당최 저자가 뭔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고, 맘에 드는 책을 만나면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지 알 수가 없고, 끔찍하게 좋은 책을 만나면 나만 알고 싶었다. 무식이 탄로날까 두렵고, 나의 표현이 진부할까 염려스러웠으며, 나의 보물을 들킬까 불안해서 이래저래 서평을 미뤄왔다하겠다. 아. 이런 기우도 추가. 너무 잘 써서 대학생들이 그냥 긁어다 낼까봐. 피식.

 

 

책 읽기가 어려운 사회, 책 읽고 감상문 쓰기는 더더욱 어려운 작금의 사회 풍토에서 이 책의 출현은 참 반갑다. <집 나간 책>에 대한 다른 서평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 서평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준다. 서평은 독후감, 독서감상문 아니던가. 말 그대로 책을 읽고 나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자리다. 내가 무슨 전문갑시라고 작품의 문학적 평가가 어떻고, 수사修辭가 어떻고에 대해서 떠들겠나. 서민 교수의 서평을 쭉 읽다보면 그가 소개한 책도 책이지만, 희한하게 저자에 대해서 많이 알 수 있는데 그만큼 그가 책에 자기 삶을 잘 녹여 맛깔나게 풀어냈다. 된장 풀듯 술술~  예로 <온도계의 철학>에 대한 서평을 보자. 책에 대한 내용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서민 교수가 저자에게 품었던 라이벌 의식에 대해서만 줄줄 읊다가 '너에게 지기싫어 열심히 읽었지만 아직 덜 읽었다'는 고백으로 마침. 그 덕에 독자들의 마음에는 '아니, 도대체 저자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라는 궁금증이 철썩인다. 일상과 책의 연결고리를 기깔나게 찾아내 엮고야마는 서민교수는 진정 타고난 서평가. 인정.

 

 

생각 좀 하고 살아요, 우리 

 

 

갑자기 왜 문학소녀가 되었냐는 동생의 물음에 '내 생각이 빈곤하여 남의 생각이라도 빌려오련다' 라고 답했다. 요즘 세대, 정말 생각이 없다. 생간이면 용왕에 다녀온 토끼처럼 바위틈에 떼놓고 왔다는 거짓말이라도 먹힐텐데, 정작 생간은 멀쩡한데 생각이 없다. 예전에는 인터넷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며 그 잔인함에 무서웠지만, 요즘은 '다들 난독증이 있는건가' 싶을 정도로 텅 빈 생각들의 잔치에 무섬증이 밀려온다. 서민 교수는 풍자를 통해 본인의 블로그에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편이라, 그의 블로그에는 악플들이 들끓는다. 그런데 웃긴건 많은 악플들이 본문을 이해하지도 못한다는거다. 서민 교수와 정치성향을 같이 하면서도 글의 내용을 이해못해 남긴 신랄한 댓글을 보면서는 좀 짠해지기도.  

 

 

"젊은이들은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책을 읽지 않아서다...요즘 아이들은 책을 멀리하는데, 더 무서운 사실은 자신이 책을 안 읽는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49)

 

 

(글의 생산라인인 출판사에 몸 담았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의 젊은이로써 참담하여 할말이 없다. 책을 안 읽는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던 젊은이로써 더욱 할말이 없겠다. 끄응. 같은 세대를 위한 변명을 해보자면 늘 경쟁체제 안에서 경마장의 말처럼 달려야했고, 누군가를 이겨야했고, 불안감에 잠도 오지 않았고, 책 볼 여유 따위는 정말 없었습니다. 대학에 가면 달라진다 했는데 역시 경마장의 말처럼 달려야했고, 누군가를 이겨야했고, 불안감에 잠도 오지 않았고, 토익책 이외의 다른 책은 볼 여유도 이유도 없었습니다. 저도 누군가를 밟고 이겨야 했으니까요. 끊임없는 쳇바퀴가 계속 되는 바람에 우리 세대가 이렇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신기한 점은 책은 볼 여유조차 없는데, 스마트폰은 자꾸 들여다보게 됩니다.

 

 

읽을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저자는 열심히 노력해도 취업이 안 되는 작금의 시대가 20대를 괴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20대를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다시 돌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우연히 김영하 작가의 세바시 강연을 봤다. '인간은 왜 쓰는가?'를 주제로 풀어낸 그의 강연 핵심.

 

 

"글을 쓸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글을 쓸 수 있다면 그는 파괴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살아있어요. 글을 쓴다는 것은 만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살아있으니까 쓸 수 있다. 쓸 수 있으니까 살아있는거다. 나의 예전 남자친구는 하루의 끝에 늘 일기를 썼다. 몇 편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너의 유치함은 영원한 쏠로! '오늘은 많이 먹었는데 주말이니까 괜찮겠지?' '여자친구랑 같이 놀고 싶었는데 기분이 별로 안 좋아보여서 슬펐다' 의 수준. 도대체 이런걸 왜 쓰냐고 물어보니 '미래의 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놀랍게도 며칠 밀리게 되면 밀린 날의 기록을 몰아서라도 다 채웠다. 마치 실록을 써내려가는 사관같았다. 어찌됐든 그는 계속 썼고, 현재도 쓰고 있을 것이며 짐작컨대 훨씬 훌륭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층 단단해졌겠지.

 

 

김영하 작가의 말을 빌려 살짝 꼬아본다. '읽을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동영상 대신 책을 낙점짓던 그 순간에도 '책 읽기는 정말 귀찮다'라는 생각과 짜증이 확 몰려왔음을 고백한다. 온 몸에서 거부를 하는거다. 눈으로는 읽어야하며, 손으로는 넘겨야하고, 머리로는 끊임없이 생각해야하는 3중고 아닌가. TV는 왜 그렇게 넋놓고 보게되지? 라고 곰곰 생각을 해보니, 요즘 TV는 빠지지 않고 자막이 있었다. 시각정보의 직접적 제공이라는 1차적 기능에다 그 시각적 정보까지 '풀이' 해주고 있었다. 누군가가 뭔가를 맛있게 먹고 있는 장면. 예전같으면 '와 맛있겠다' 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친절하게 자막으로 '와 맛있겠다' 라고 써준다는거다. 자막의 활용으로 한층 더 풍성하게 TV를 감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정말로 점점 더 생각할 필요가 없는거구나 싶더라. 책을 읽기도 전에 왜 그렇게 격렬한 짜증의 쓰나미가 일었는지도 이해가 된다.

 

 

내 주변만 돌아봐도 꾸준히 쓰는 사람은 잘 없다. 읽는 사람도 잘 없다. 그렇지만 읽기라도 하는 사람은 확실히 다르다. 이 세대를 읽기의 세계로 유혹하려면 '많이 읽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가 되어, 그들보다 한 발 앞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라고 광고하는 게 제일 빠르긴 하겠다만. 

 

 

* 혹시나 서민 교수님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저도 친필싸인담긴 저서 선물로 주시면 안될까요? 지나가던 협객님이 자랑했는데 몹시 부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