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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생일 축하해요, 아버지

 

 

 

 

 

오늘이 아버지의 생일이다. 퇴근하고 바로 KTX에 몸을 싣고 집으로 내려왔다. 두 달 반만에 오는건가? 어제 전화를 넣어 아버지 생일이니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5년에 한 번 봐도 되니 바쁘게 일할 땐 바쁘게 일하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오늘 나 도착 한시간 전부터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면서. 아버지와 함께 역에 나를 마중나온 어머니의 말이다.

 

 

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엄마와 집 근처에서 케이크를 하나 샀다. 초가 몇 개 필요하냐는 물음에 '아버지가 58년 생이세요' 라고 했더니 58개가 필요하겠네요 라며, 혹시 계산이 틀릴수도 있으니 59개를 넣어주겠단다. 긴 초 다섯개와 짧은 초 아홉개를 받아들고 집으로 가는 길. 문득 '아버지 환갑 때는 사위도 있으려나.' 라고 중얼거리니 엄마가 눈을 치켜뜨며 '니 아직도 만나는 놈 없나' 라는 걱정스런 대답이 돌아온다. 피식. 내가 그땐 일일 사위라도 만들어서 오겠다며 웃었다.

 

 

아버지 생일이라고 분명히 며칠전부터 미리 말했는데도, 하나밖에 없는 동생놈께서는 어디냐는 물음에 밖이라며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라는 톡을 딸랑 보내왔다. 이 XXXXX ! '니 늙어서 생일 됐는데 니놈 아들내미가 여친이나 만나고 있어라!' 라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엄마는 동생에게 오리가 상을 걷어차는 그림을 하나 보냈다.  

 

 

 

 

 

작은 케이크에 내가 불을 붙이고 셋이서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가 초를 껐다. 케이크를 바라보는 아버지 표정이 아이같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눈동자가. 넘실대는 초들이 하도 많아서 작은 파도 같았다. 초를 끄라고 하니 아버지는 장풍 쏘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친다. 아차. 소원. 많은 초를 불어끈 아버지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으니 '건강하고 돈 많이 벌게! 아차차. 그냥 건강하게!' 라신다. 케이크 두 조각을 먹고 아버지는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많이 늙었다. 이제 나는 무슨 사진 속에서든 어린 티를 다 벗고 완연한 아가씨 태가 난다. 나라는 사람이 아가씨가 다 되었다. 아버지의 모든 젊음을 다 털어넣은 내가 이제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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