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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8월 11일 : 쏘잉 쏘리

 

 

△ 우쮸쮸 내 새끼...

 

 

 

아마 두어해 전에 사두고는 개시도 안 한 블라우스 단추가 똑 떨어졌다. 특히 여자 옷은 단추 하나가 빠지면 똑같은 단추를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어서 옷 전체의 단추를 갈아야 하는 일도 있다. 전체의 단추를 갈고 싶어도 마땅히 옷과 어울리는 예쁜 단추를 발견하지 못하는 날엔 쎄굿바.

 

 

단추 떨어진지는 한달은 족히 지났을거다. 단추를 잃어버릴까봐 벽에 딱 붙여두고는 늘 바라보며 지냈다. 그래 언젠간 달아줘야지, 언젠간 달아줘야지. 언젠간...누가 좀 대신 달아줘야지. 암.

 

 

내가 절대 안하는게 세 가지 있는데 걸레질이랑 바느질이랑 다림질이다. 요즘은 밀대로 방을 쓰삭 밀 수도 있지만, 아무튼 예전에는 어머니가 시켜 마지못해 걸레질을 할 때마다 걸레와 함께 내 무릎이 닳는 느낌이었다. 아니, 걸레보다 내 무릎이 더 빨리 닳아서 구멍이 날까봐 무서웠다. 그리고 더러운 걸레를 왜 또 빨고 왜 또 더럽게 해야하는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나는 옷도 일회용이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는 사람인데, 걸레가 왠 말이야.

 

 

옷을 다려본 건 아마 고등학교 교복 이후로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쭈글쭈글한 옷을 입고 다니는건 아니고, 이 나이 먹도록 어머니가 다리미를 꺼내들게 하는건 더더욱 아니고. (그러고보니 우리집에 다리미가 자취를 감춘게 도대체 몇년전이지? 왜 아무도 옷을 안 다려입는거지.) 어른이 된다는 건 하기싫은 일을 잘 해내는 것보단, 하기싫은 일을 요령껏 피하는 것에 가깝다는 확신이 들면서 아예 내 인생에 다리미를 치워버렸다.

 

 

바느질은 이 세가지 중에 가장 못하고 가장 싫어하고 가장 끔찍해하는 일 중 하나. 살면서 딱 한번 60점을 맞은 적이 있는데 그게 가정이다. 중학교 때 60점을 맞았다. 홈질, 시침질, 감침질, 공그르기, 실기둥 만들기... 나는 천을 스테이플러로 죄다 박아놓고 시침질이라며 시치미를 뚝 떼고 싶은 학생이었다. 서예도 싫어했는데, 붓 엉덩이를 살살 달래가며 톡톡 두드려 글자 획 끝을 둥글게 마무리하는 판본체는 납작붓으로 죄다 적어냈다가 손바닥이 납작하도록 매를 맞았다. 스테이플러 심이 철이어서 어찌나 아쉬운지. 그렇지만 않다면 천에 간격을 두고 뚝뚝 박아 그냥 내고 시치미나 떼고 있을텐데. 감침질은 감춰버리고 공그르기대신 공이나 굴리지 뭐. 바늘을 들고 수업시간 내내 입을 삐죽거리며 어깃장을 놓다가 우리반에서 바느질 꼴찌를 했던 것 같다. 흥. 참 이상하게도 한살터울의 남동생은 실과 바늘의 마법사 같았다. 가정시간마다 뭘 어찌나 예쁘게 만들어오는지 냄비 받침대도 만들어 오고, 필통도 만들어오고, 신주머니도 만들어왔다. 너무 예뻐서 산거냐고 물었더니 동생이 학교에서 만들어왔댔다. 반달프냐?

 

 

아무튼 가정 시간 이후에 바늘과 내 손은 다시는 만나지 않을 줄 알았건만. (혀 깨무는 심정으로 누구에게 선물하겠다며 십자수 액자를 해 본 것도 딱 한번이고, 역시나 그 혀를 또 깨무는 심정으로 누구에게 목도리를 떠주겠다며 동동거리다가 털실을 내팽개친것도 딱 한번이긴 하다.) 왠만한 단추 잃어버린 옷은 그냥 쎄굿바 했다. 잘가라. 다음 생엔 지퍼달린 옷으로 태어나라. 그래도 나는 단추달린 옷을 좋아했다. 단추의 동그랗고 단정한 느낌이 좋았다. 이건 마치 얼마전 인터뷰를 했을 때,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신발끈도 못 묶어서 누군가가 늘 신발끈을 묶어준다고 했던 이야기와 비슷하구나. 나는 그때 혀를 찼고, 옆의 다른이는 '신발끈이 없는 신발을 신으면 되지 않느냐' 라고 반문했다. 신발끈 있는 신이 예쁘다는 것이 그 친구의 주장이었다.

 

 

그래도 한 번도 안 입은데다 예쁜 옷인데 단추가 떨어져 너덜거리는 건 좀 슬프다. 오랜만에 그 혀를 다시 깨무는 심정으로 바늘을 꺼냈다. 얼마를 끙끙 거렸는지 모르겠다. 혼자 실로 공예를 하고 있었다. 짜증이 북 치밀었다. 오늘 일찍 쉬려고 퇴근도 좀 일찍했는데 이게 뭔가. 피곤해서 그런지 단추가 나를 비웃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아직도 그대로냐 육십점아. 육심점의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이를 다시 앙다물고 바늘을 높게 빼들었다. 손가락을 찔렀다.

 

 

 

난 육십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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