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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8월 7일 : 처음

 

△ 나는 너를 보면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까. 짓고 있을까.

 

 

 

 

회사에 강아지가 왔다. 대다수 여직원들의 열화와 같은 꺄흥♡에 힘입어 회사에 강아지가 생겼다. 아. 세상에 난지 백일이 채 안되었다는 강아지. 작고 따뜻하고 동그마한 너를 어떻게 품에 안지 않을 수 있을까. 까맣고 반들반들한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에 대한 견해없는 착한 눈. 그저 착한 눈. 입을 뻐끔거려 손가락을 물려주었더니 앙증맞은 이빨로 비벼댄다.

 

 

마른 하늘에 문득 벼락이 쳤다. 이렇게 날씨가 맑은데 비가 오니 이상해, 라고 누군가 말했고 강아지가 천둥소리에 놀라 작은 몸을 움찔 떨었다. 너는 세상이 처음이구나. 그 처음이 부럽구나 싶다가 문득 방금 뱉은 말은 취소할까 싶다. 다시 모든걸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면 너무너무 힘들꺼야. 누군가를 벅차게 사랑하는 것도, 벅차게 사랑한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도,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칼에 베인 듯 움푹 상처가 생기는 것도, 누군가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볼때 내 안에서 일렁이는 작은 파도도, 모두모두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면 힘이 들꺼야. 익숙해서 편한 구석이 겨우 생기는 나이니까. 지금의 내 나이는.

 

 

*

 

 

책이 나왔다. 남자 직원들이 책을 실은 트럭 앞에 일렬로 붙어서서 책을 날랐다. 일개미같이 손발이 착착 맞는다. 책을 휘리릭 넘겨보던 희라가 편집후기를 읽더니 "뭐야, 완전 잘 쓰네. 우리 반기자" 라며 나를 한 번 안아보자며 푹 안아주고 갔다. 희라 옆의 누군가는 "글쓰는 사람이니까."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한 것도 같은데 그 무덤덤함이 참 좋았다. 글 쓰는 사람이니까. 뭐랄까. 얼마전 몇년만에 동창에게 날아온 "너 아직도 글쓰냐?" 라는 안부가 감사했던 것처럼. 나는 아직도 쓰고 있고 쓰고 싶은 사람이니까.

 

 

그걸로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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