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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들/다른동네

눈물의 서북면옥

 

 

 

△ 꼭 맛 때문만은 아니지만 우리는 눈물바람으로 냉면을 들이켰다. 후루룩

 

 

 

 

나는 평양냉면 매니아다. 원래도 냉면을 원체 좋아했지만, 몇 해전 상경해 '제대로 된' 평양냉면을 영접하자마자 온 미뢰를 슴슴한 육수에 씻어내며 그간 먹어왔던 久냉면과의 추억을 지우고 오로지 평양냉면에만 골몰하게 됐다. 유명하다는 평냉집은 비가 쏟아지든 눈이 퍼붓든 쫓아가서 맛을 봤고, 어쨌든 지금까지는 마포의 을밀대 육수에 푹 잠겨있었다. 아주 그냥 푸욱.

 

 

을밀대에서 냉면가락을 들이키면서도 을밀대가 먹고싶다고 말하는 내게, 옆자리 동료와 내 친구의 타이틀을 동시에 가져간 고현진 양이 '서북면옥이 진짜 맛있다' 라는 말을 했다. 서북면옥? 그 뒤 을밀대에서 서북면옥이 몇 번이나 서로의 입에 오르내렸고, 우리는 지난 토요일 멤버를 꾸려 - 멤버래봤자 한명 더 추가 - 광진구의 서북면옥으로 떠났다. 

 

 

마포에서, 봉화산에서, 심지어 김포에서 서북면옥을 향해 서서히 모여드는 그림자들. 2호선 구의역 11시. 봉화산의 종호가 가장 먼저 도착했고 나는 정각쯤 도착했으며, 김포의 현진은 정확히 4분을 늦었다. 고작 4분 늦을꺼면서 미안함에 헐레벌떡 달려오는 미스 고를 보며, 종호에게 낮은 소리로 '야 화난척 하자' 라고 지령을 내렸고 다가온 현진을 보자마자 '야 늦으면 어떡해' 라고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너 너무한거 아니냐?' 라는 서러움에 복받친 한마디가 튀어나온다.

 

 

간밤에 홍대의 어딘가에 찌그러져 밤 열한시가 넘도록 나의 고민을 받아주던 소중한 현진은 어디가고, 이런 작은 장난하나도 그냥 못 넘기는 속좁은 이 여자는 누구냐. 내가 고작 4분 늦은 사람에게 늦었다며 타박할 인성은 아니거늘, 도대체 이 아이는 나를 그동안 어떻게 생각한 것인가. 이 모든 생각들이 0.1초 안에 휘리릭 지나갔고 나의 눈에도 급기야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만나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두 여자를 사이에 두고 종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중에 물어본 이야기지만 둘이 미리 짜고 자기를 놀리는 줄 알았단다. 아무튼 나의 눈물은 버스에서도 현재진행형이었고 현진은 그런 나를 두고 미안해하다 끝내는 '에휴 이게 다 나 때문이여' 라며 비난의 화살을 자기의 허벅지에 꽂는다. 푸욱.

 

 

우리를 실은 버스는 냉면집 건너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알고보니 현진은 두시간 반을 달려 냉면을 먹으러 왔단다. 김포에서 광진구. 두시간 반을 달려오느라 피로하기도 했고 늦을까봐 노심초사하던 차에 내가 만나자마자 타박을 하니 서러웠다고. 거참. 서북면옥은 11시 30분에 오픈이었으나 이미 몇사람들이 대기표를 뽑고 닫힌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11시 10분. 10분정도를 더 기다리니 보라색 머리를 한 주인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건조한 표정으로 '들어와유' 란다. 사람들 손에 쥔 대기표를 보지도 않고 휘익 걷어 빈자리에 앉힌다.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등장했는지 가게 문을 열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밀고 들어와 정말로 1분도 안되어 가게가 꽉 찼다.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냉면을 좋아하는지도 처음 알았다. 20분에 도착한 사람들도 나름 일찍 온다고 부지런을 떨었을텐데 자리가 없어 밖에서 대기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우와. 

 

 

우리는 물냉 세 그릇과 만두 한 접시를 시켰고, 물냉은 맛있었다. 아까의 눈물은 지금 흘렸어야 할텐데. 그러나 미스 고는 불현듯 을밀대를 떠올리며 '을밀대가 더 맛있다'라고 했다. 이제는 서북면옥에서 을밀대를 논하는구나. 평양냉면을 처음 먹는 종호는 먹을만하다며, 을밀대는 어떠냐고 묻는다. 우리는 다시 을밀대로 가자. 을밀대는 회사에서 가까우니까 다들 만나자마자 우는 일은 없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