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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

2015년 6월 24일 : 두근두근 호랑이굴

 

햇살이 남은 하루를 간신히 적시는 여름 저녁, 오랜만에 기타를 끌어안고서

 

 

 

 

 

'지현씨!'

 

 

평소에 잘 쓰지 않는, 그러니까 정확히는 잘 '쓰이지' 않는 내 이름이라,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기라도 하면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고 언젠가 고백했던가. 기타를 엉거주춤 들고는 오도카니 서있는데 두번째 보는 얼굴이 첫번째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맘에 꼭 들던 그 가수에게 기타를 배우게 됐다. 그래. 내가 글도 좋고, 노래도 좋고, 정서도 좋다며 사랑에 빠지겠다고 떠들어대던 그 가수.

 

 

어쭈, 이 여자 저돌적이네! 싶겠지만 기타는 늘 배우고 싶었고, 배우게 된다면 제대로 배우고 싶었고, 제대로 배우고 싶은 사람한테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기타 레슨을 시작한다기에 덥석 연락을 했다. 저요! 뭐랄까. '지현씨'로 스타트를 끊은 만남은 굉장히 어색할줄 알았는데 정말 편했다. 일전에는 관객 대 가수로 만난거고, 노래 몇 곡이 끝나고 씨디를 구입한게 전부였으니. 오늘에서야 처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건데 편했다. 혼자서 편했다. 막 시작하게 된 일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과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잠시간은 기타를 잊고 있었다. 작은 공간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였을까, 그 공간이 주는 느낌과 꼭 같은 사람을 마주하여 안도했던걸까. 마음이, 마음을 쉬었던 것 같다.

 

 

저녁을 먹지 못했다는 얘기에 따라나오는 사과 주스 한 잔과 허브향이 나는 쿠키 두 조각. '오 혼자 사는 남자집에 이런 쿠키!' 라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거참. 남은 하루를 적시는 어슴어슴한 푸른빛이 작은 방을 가만히 비추고, 꽤 잘 가르치는 선생님 덕에 꽤 열심히 기타를 안고 있었다. 여태 읽어온 그의 시선이라면 분명히 관찰당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을 알았지만 허당끼와 빠심은 감출수가 없더라. '내일 공연에 저 가요!' 해놓고는 '저...좀 빠순이 같죠' (응. 빠순이 같다. 내가 봐도 너. 몹시.) 라던가, 내일 공연을 몇 시간 할꺼냐, 노래는 어떤걸 부를꺼냐, 작곡 능력은 타고 나는거냐, 기타는 언제부터 쳤냐, 고향이 어디냐, 글이 좋으니까 책을 내셔라, 쓰는 수첩은 뭐냐... 기타 강습료내고 인터뷰하러 가셨어요?

 

 

도레미파솔라시도만 줄곧 짚던 수업이 끝나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 나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거기는 옥상문인데요' 내내 흘러넘치던 허당끼 때문인지, 버스정류장 근처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고맙습니다.

 

 

 

*  생각해보면 머물렀던 내내 침묵이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내가 쉼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게 기쁘고 즐겁고 편안했다. 편안해서 기쁘고 즐거웠던겐가. 사람이 주는 느낌은 참 즉각적이다. 당장에 알 수 있다. 이 사람이 나와 결이 같은지 같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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