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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두운 의자 안에서

<한여름의 판타지아>_ 내래 고조, 고조에 한번 가보고 싶습네다

 

 

 

 

"영화 보자!"

 

 

여느 모녀들처럼 함께 쇼핑을 하거나 목욕탕을 가거나 하는 대신, 나와 엄마는 그간의 소회를 영화로 푼다. 이틀내내 세 편의 영화를 때려넣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보고 나와, 곧바로 <쥬라기 월드>로 입성. 그 다음날은 마침 <극비수사>개봉일이라 개봉에 맞춰 보았다. 어머니가 김윤석 배우를 무척 좋아한다. 나는 이 배우가 좀 더 다양한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흑백의 색

 

 

일본의 고조라는 자그마한 시골이 영화의 풍경.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같은 배우들이 같은 풍경 속에서 다른 역할을 맡는다. 배우라는게 이래서 배우구나, 할 정도로 1부와 2부의 사람들이 묘하게 닮고 다르다. 1부에서 바로 2부로 이어지는데도 같은 사람을 다른 사람이라 의심하게 만드는 분위기란. 나도 아마 몸의 언어에 탁월했다면 배우의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겠다. 몸으로부터 퍼져나오는 것들에는 전혀 재간이 없어서 배우의 비읍도 꿈꿔본 적 없지만.

 

 

 

 

 

△ <한여름의 판타지아> 메이킹 필름 中

 

 

 

고조라는 작은 도시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한 감독의 시선으로부터 영화는 출발한다. (처음에는 메이킹 필름인줄 알았다. 메이킹 필름을 영화화했구나 싶었다.) 고조의 면면을 들여다보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도시의 과거에 대해 묻기도 하면서 서서히 고조를 알아간다. 모든 과정이 사람의 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나이든 사람,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 아직 젊은 사람의 입을 거쳐 도시의 얼굴이 완성되어간다.

 

 

영화 중반부에 고조의 아름다운 풍경을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관의 많지 않은 사람들이 동시에 '아 좋다' 하는 짧은 탄식을 뱉었다. 그리고 그 때 문득 깨달았다. '아 이 영화 흑백이구나!' 시작부터 색을 다 지웠는데도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만큼 빛깔이 풍성했달까. 고조를 바라보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사람들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색채가 아름다운 영화. 

 

 

 

벚꽃우물 

 

 

2부의 제목은 '벚꽃우물'. 고조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가 함께 시간을 나눠쓰는 과정을 담았다. (1부의 공무원이 2부의 감말랭이 총각이라는건 상상도 못했다! 둘 다 분위기가 잘생기긴 했지만.) 서로의 호감이 영화 전반에 짙고도 은은하게 깔려있는데, 일본인 남자가 한국인 여자에게 참 살갑다. 어머니는 문득 '참 일본사람은 친절해' 라며 국가 칭찬으로 넘어간다.  '아 좋아하니까 그렇지!'

 

 

벚꽃우물은 고조에 있는 작은 우물이다. 이 우물가를 지나다 남자가 여자에게 우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을을 지나던 한 대사가 노파에게 물을 달라고 하자, 노파는 마을에 우물이 없어 아주 멀리까지가서 물을 길어온다. 노파의 정성에 감동한 대사는 지팡이로 서있던 장소를 한 번 툭 쳤고 물이 솟아났다. 그 물을 마신 노파는 갑자기 젊어졌고, 대사와 며칠을 보내게 되는데 대사가 떠나고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우물가에 살고있는 잉어다. (잉어라는 말은 남자가 여자를 놀려주려고 한 말.)

 

 

남녀는 하루의 끝에서 입맞춤을 나누지만, 입맞춤을 나눈 후 남자의 '불꽃놀이를 보러가자'는 제안을 여자가 거절한다. 여기까지라는거지. 남자는 홀로 쓸쓸히 축제거리를 싸돌아다니며 꼬치를 우걱우걱 뜯는다. '아이고 어쩔쓰꼬' 내가 중얼거리니 어머니가 '그래서 벚꽃우물이잖아'라고 알려주신다.

 

 

 

 

 

 

 

 

 

장건재 감독은 '멀리서부터 가까이 들어가는 과정이 본인에게도 많이 배움이 된 것 같다' 라고 말한다. 영화를 통해 풀어내는 감독의 그런 시선이 관객들의 마음을 때린게 아니었을까. 메이킹 필름도 영화 못지 않게 좋았던 이유는, 감독과 배우들이 따뜻한 시간과 시선을 함께 쏟아부으면서 만들어간 영화라는게 담뿍 느껴지기 때문. 어쩌면 이 영화 자체가 정말 메이킹 필름 맞겠구나. 누군가에게 따뜻한 시간과 시선을 쏟아부으면서 만들어가는, 과정과 결과가 꼭 같은.  

 

 

 

 

 

 

 

 

 

 

 

 

 

결국 이 영화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영화. 내 삶 속에 들어있는 누군가에게 어떤 시선을 던질 것인가. 겉에서 보이는 누군가의 풍경이 흑백이라 지레짐작말고 그 사람 가까이 들어가서 이야기를 듣고, 시간을 나누다보면 총천연 눈부신 알맹이를 만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