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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두운 의자 안에서

미스터 컴퍼니 : 난 '이상'적이고 넌 '이상'해 시키야

 

 

'컴퍼니'가 소재로 쓰이는 웹툰 작품 두 개를 알고있다. (나는 웹덕후니까!)

작년, 온 국민의 아니 온 직딩의 상처난 가슴 한켠을 따듯하게 보듬어준 윤태호의 <미생>.

그리고 지금도 인기리에 연재되는 곽백수의 <가우스 전자>.

 

윤태호의 <미생>은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인 乙의 시각에 이입이 된다. 조직 내에서 깨지고 부딪치고 격려받고 성장하는 주인공 乙과 함께 극중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와 크고 작은 사건들을 따라가다보면, 괜히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같은 乙의 입장에서 공감받고 위로받는다. 나를 갈구는 상사의 입장도 묘하게 이해가 된다. 그리고 다시 회사 생활에 힘을 내본다. 으쌰. 그래, 그래(주인공 乙의 이름)도 버티는데 나라고 못버텨.

 

곽백수의 <가우스 전자> 는 웃음 코드 뒤에 감춰진 작가의 예리한 시각이 참 재밌는 작품이다. 어찌나 그렇게 직장인들의 마음을 딱딱 집어내는지. 직장인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심리, 행동들이 다 곽백수 작가 손아귀에 있다. 쿱. 뜨끔!

 

△ 곽백수 <가우스 전자> 중

 

 

자, 이번에는 진짜 '컴퍼니'다. 그것도 갓 차려진 밥처럼 막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신생 컴퍼니.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브레인들이 '멋있는' 회사 하나를 만들었다. 오르그닷 이라고. 흡혈구조의 의류시장에 윤리적인, 그야말로 올바른 흐름을 만들어보자! 으쌰으쌰 의기투합해서 만든 취지는 그야말로 존나 멋있는 회사이다.  그러나 현실은 점점 이상하게 꼬여만간다.

 

이상은 저기 높은 곳에 있다. 회사를 만들고 멤버들을 모을 때 내세웠던 슬로건이 술로건이 된다. 술먹고 서로 언성을 높인다. 무색하다. 

처음 몇 달간은 다같이 으쌰으쌰를 외치며, 월급도 안나오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다. 지친다. 서로에게 슬며시 짜증이 난다.

 

멤버들은, 처음 여기 올때 대표가 제시했던 실험정신이며 고매한 이상은 어디갔는지 한탄한다. '내가 왜 월급도 못받고 여기서 뺑이를 치고 있지?'

이상이며 일하는 가치를 떠드는 멤버들에게 대표는 소리를 빽 지른다. "여기는 회사야! 니네가 회사를 알아? 회사는 수익이 나야된다고! 그렇게 말꼬리 잡을꺼면 나가!"

 

자꾸 돈, 돈 하며 일단 돈되는 아이템에 집착하는 대표를 보며 (그 아이템은 친환경 소재로 만든 추리닝이다) 멤버들은 그들끼리 의기투합해 이것저것 다양한 디자인과 실험을 하고 싶어한다. 대표는 격렬히 반대하지만 멤버들이 어거지로 밀고 나가고 크게 말아먹는다. 대표와 멤버들의 갈등이 극에 달한다. 인신공격이 시작된다. 멤버들은 결국 사장을 등떠민다. 사장님이 나가세요.

 

같은 가치를 쫓아 왔지만 각자의 입장이 다르고, 같은 현실에서도 각자가 겪는 심리적 고충이 다르다. 누군가는 결국 사표를 쓰고, 누군가는 잠수를 탄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서로 물어뜯고 소리 높이는 상황이 참 답답하고 낯까지 벌개진다. 내가 꼭 저랬을꺼 같아서. 나도 어느 상황에서는 소리 높이는 자였고, 어느 상황에서는 귀를 틀어막고 인신공격을 일삼는 누군가였겠지.

 

이상으로 가긴 너무 어렵다. 이상이 저 밤하늘의 별처럼 너무 멀리있기도 하지만, 별까지 놓는 사다리가 쉽지 않다. 사다리를 만들고, 부수고, 여기놓고 저기놓고 하다보면 '내가 왜 도대체 저 별에 가려고 했지?' 라는 회의감이 든다. 같이가기로 한 사람들이 처음엔 '이상적'인 멤버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도대체 '이상한' 놈들일 뿐이다.

 

오르그닷은 지금도 꾸준히 운영되고 있으며, 매출 규모도 키워나가는 듯도 하다. 결국 이상으로 가는 놈은 이상한 놈들중에 가장 이상한 놈일까, 가장 안 이상한 놈일까.

 

 

 

* 네티즌 평점이 평균 8점인데 비해서, 기자 평론가 평점이 짜다. 아무래도 서로 물고 뜯고 하는 장면들만 러프하게 보여주다보니 기승전결 구조가 없긴해서 그런가보다. 뭐, 그래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게 우리 인생 아닌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씹고 뜯는 이 영화, (내 입에는)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