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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alone/어떤 낱말들의 모임

서민과 귀족녀 <집 나간 책>

 

△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예요 그대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요 ♪'

실천의 최전방이다. 더 이상 미루지말고 의지 탑재 할 때. 어영부영하다 훅간다.

 

 

 

 

짐 중의 짐이 책 짐이다. 책의 무게 때문에 넌덜머리를 내면서도 이삿짐을 빼는 그 날 아침까지 책을 받아봤다. 이사에 지친 나를 위한 책 처방이라 합리화하면서. 나에게는 늘 책이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소유의 대상이라, 손에 들어오는 순간 안심하고 방치하는 본인의 성미를 잘 안다. 읽지도 않을 책에 대한 욕심은 왜 끝내 떨어 낼 수 없는 건지. 오죽하면 아버지가 내 고향방 서재를 보고 감탄인지 비통인지 경계가 흐릿한 한마디를 뱉었던가. "내가 여태 번 돈이 다 여기있구나!"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쓴 적이 거의 없으며, 모든 컬렉션은 제가 번 돈으로 채웠는데 무슨 월권이시죠? 라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나오려 난리법석 떠는 것을 손바닥으로 겨우 막았다. 이 집은 아버지 집이다. 명심.) 이삿날 받아본 책은 서민 교수의 <집 나간 책>. 그 많은 책들을 다 고향집으로 보내버리고, 서민 교수의 이 책 한권과 함께 산 책 한권만 캐리어에 넣었다. 물론 2주가 넘도록 캐리어에서 나온 적이 없다. 집은 나왔는데 캐리어는 못 나왔구나. 미안하다. 

 

 

서민 교수는 글로 빵 떴다. 몇 해전, 네이버 캐스트였나 우연히 한 학자의 글을 접했는데 그게 서민 교수님이다. 기생충에 관한 썰을 푸는 학자로, 그의 글솜씨와 기지가 실로 대단해서 정신없이 웃었더랬다. 와 매력있네 이 사람. 이따금씩 그의 글을 들여다보다가 잊고 지냈는데, 지난달 초에 치른 한 기업의 입사 시험에서 서민 교수에 대한 문제가 출제되어 반가운 마음이 물씬. 면접관들 앞에 홀로 우뚝서서 입사 포부를 말하는 눈물없이 못볼 그 짠한 대목에서는 '서민 교수님처럼 어쩌고 저쩌고...' 라며 일면식도 없는 그 이름을 열심히 팔았다. 미안해요. 그래서 책 샀어요.

 

 

어제는 집에서 일 원고를 좀 쓰고 - 잠시였지만 프리랜서의 고충을 맛봤다. 한 공간에서 일과 생활의 경계를 구분짓는게 몹시 힘들었다. 보통 현대의 삶에서 의미하는 '일터'라는 개념은, 공간의 구분뿐 아니라 시간의 구획도 함께 제공하는 거니까. 오로지 철저히 일만을 위한 시간말이다. 생활이 들어있는 공간의 틈바구니에 일을 억지로 끼워넣는다는게 얼마나 고롭던지. 원고를 쓰다가 눕고 싶었고, 누운 김에 잠이라도 자고 싶었다. 심지어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도. 그래. 나는 공부도 도서관 아니면 안되는 사람이 아니던가. 공부를 너무 오래 놓아서 잊고 있었다 - 여유가 생기니 책 생각이 났다. <집 나간 책>을 드디어 캐리어 밖으로 구출해냈다. 서민 교수가 읽은 책에 관한 책인데, 늘 서평을 남기는 것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거리낌을 갖고 있던터라 이 책을 보며 서평이란 어떤 것인가 구경하고 싶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몇 편 읽다말고 서평에 등장하는 책을 사러 갑자기 벌떡 일어나 서점에 가버렸지만.

 

 

서민 교수는 글로 떠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십수년간 글에 매진한 인물이다. 한 사람에 대해 궁금하면 모든 것을 샅샅이 터는 경향이 있어서, 그의 블로그 글과 인터뷰와 동영상을 주욱 흝었다. 이 사람 굉장히 재미있다. 서른살 무렵에는 첫 책을 출판했는데 출판해놓고보니 '너무나 쓰레기 같아서' 본인의 돈으로 그 책을 모두 사들인 뒤 절판 시켰단다. 우연인지 뭔지 출판사도 망해서 문을 닫았고. <마테우스>라는 책인데 구할수만 있으면 꼭 구해서 읽어보고 싶다. 나는야 흑역사 매니아~

 

 

그 뒤로도 글로 뜨겠다는 마음을 접지않고, 그 때부터 1년에 책 백권을 읽고 글을 꾸준히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말과 바람대로 글로 빵 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갈아넣은 뒤에는 어김없이 빛을 보게 되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참 멋있다. 윤태호 작가가 '쉽게 성취하는 사람이 참 부럽다'라는 말을 했는데, 어렵게 성취하는 사람에게는 시간과 땀만이 빚어낼 수 있는 빛이 풍긴다. 서민 교수님 블로그에 가서 낄낄거리다가 '나도 백 권 읽고 싶은데 잘 안되요' 라고 칭얼거린게 약 3주전이로구나. 그동안 나는 무슨 책을 읽었나?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얼굴을 파묻을 용으로 가지고 다니기는 했지만.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사러가기 전에, <집 나간 책>부터 다 읽고 감상문을 써보리라.

 

 

 

(*) 어제 서점가서 산 책이 일곱권이다. 아. 여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