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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

 

 

 

△ 현재의 나는 코마의 코마적 상태. 빙글빙글 뱅글뱅글.

 

 

 

"하긴 여섯달만에 일하는거니 피곤할만도 하겠네..."

빨래를 너는 친구의 등짝을 바라보다가 무섭게 눈을 뜨니 아침. 세 번째 알람에 겨우 눈을 번쩍. 잠잘 때는 특히 곁에 누가 있는 것도,  조금의 빛도 못견디는 나건만 오랜만에 맞이하는 노동의 피로 앞에서는 성정이든 성격이든 본래의 무엇은 온데간데없고나. 9 to 6. 숫자가 팽그르르 한바퀴 돌 동안의 시간을 갈아넣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었음을 새삼 느낀다. 동년배라 해도 회사원과 非회사원의 차이가 놀랄만큼 확연했던 순간에 대한 기억도 불현듯 떠오른다.

 

얼마전 선배를 앉혀놓고 얼마나 눈물을 찍어댔던가. 선배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본인이 몸담고 있는 회사에 나까지 담궈버릴 심산으로 매일의 이력서를 애닳게 부르짖고 있다. 정작 애닳아야 할 것은 나인데. '그 회사가 좋아? 여기라면 니가 재밌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무엇을 채워넣느냐는 너의 역량이지. 여기 대표가 옷을 일본작가처럼 입어(일본작가는 대체 옷을 어떻게 입는데요?).' 무슨 말을 해도 심드렁하자 어제는 심지어 '내 앞에선 존심 세우지 마. 너의 재능은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라며 그 회사 대표가 던져도 시원찮을 말까지 던진다. 참고로 이 선배, 입사한지 3주 됐다.  

 

 

 

* 갑자기 삶의 모든 국면이 순식간에 바뀌어버렸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과 공간을 누군가와 쪼개쓰고 있다. 영화Her에서 컴퓨터가 주인공 남자에게 묻는다. 너의 결혼생활은 어땠냐고.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남자는 꿈꾸는듯한 눈동자로 '누군가와 삶을 쪼개 쓰는건 꽤 괜찮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 때 영화를 함께본 남자친구는 보고 나온 직후에도 그 장면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나에게는 주인공 남자의 눈동자와 그 말 한마디가 전부로 남았다. 누군가와 삶을 쪼개 쓰는 일. (내 머릿속에서 더 멋있게 각색되었을지도 모르는) 그 말에 대해서 오래, 깊게 생각했고 나는 아마 불가능할거라는 생각이 몰래 들었다. 본디부터 혼자 있는 걸 편안해하고,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겉보기엔 친구들로 뻑적지근해보이지만, 깊은 곳의 마음은 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남몰래 미안해 하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민한 누군가들은 나를 알아차리곤 했고, 그럴때면 놀랍고 부끄러우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선배도 몇 안되는 그들 중의 한명이고.

 

 

 

* 모든 친구들의 '같이 살자'라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온 나란 사람이 '너의 공간은 물론 시간을 좀 나눠쓰겠다' 라며 한 친구의 집에 기어들어간 것은 어찌보면 혀를 깨무는 심정이다. (한달전쯤에 이 친구가 같이 살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는데, 1초만에 거절해서 본의아니게 무안을 주기도 했었고.) 당장에 어찌할 도리가 없기도 했지만, 강아지처럼 곁을 떠나지않고 무언가를 쉴새없이 이야기하며 나의 물건이나 행동, 생활 습관에 대해 지극한 관심과 정성을 보이는 누군가의 삶에 기어들어간 심정이란. 친구는 스스로를 '강아지'라고 표현했고 날 더러는 '여성여성한 남자애'라고 표현을 했다. '여성여성하네'라는 말과 '남자애를 키우는 것 같아'라는 말 사이에는 그리 적지 않은 시간이 들어있지만, 둘 다 맞는 표현이므로 그러모아 쓴다. 모든 섬세한 것에 촉을 곤두세우고 있지만-배수구의 머리카락이라던가, 고장난 수도관이라던가, 씻지 않고 담가둔 그릇을 조용히 해치우는 일 따위-같이 저녁을 먹자는 제안이나 하루에 일어난 일들을 나눈다거나 주말의 일정을 미리 공유하는 것에는 섣불리 피로함을 느끼는 나를 보고 그리 말한 것이겠지. (어제 저녁은 수차례 거절했으나 메뉴까지 바꿔가며 같이 먹자는 제안에 어찌할 바 없었고, 곁에서 쉴새없이 조잘거리는 누군가를 잠시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물론 잠시.)  

 

 

* 이틀째 서초에서 여의도로 출근하고 있다. 버스를 후다닥 타고, 다시 10분여를 걸어 지하철 시간표를 체크하며 바쁘게 걷고 걸어, 요즘 참 말많은 9호선 급행에 몸을 싣는다. 이름 참 잘지었다. 정말로 급하다 급행. 나 급행. 너도 급행. 그래서 다같이 뒤엉켜타면 난리법석. 눈뜨고 얼마지나지도 않은 귀한 아침시간을 출근에 쏟는 것도 서러운데, 이름모를 사람들과 뒤엉키노라면 온갖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게다가 요즘처럼 옆에서 누가 기침이라도 해봐라. 오늘 출근길에는 옆의 아가씨가 에어컨 바람에 밭은기침을 하도 해대는 통에, 온 몸의 신경이 과열되다못해 내리녹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도시에서는 이름모를 옆사람을 참 끊임없이도 미워하게 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만, 인연이라도 좋으니 그냥 옷깃 안 부딪치고 제 갈길 잘 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빡빡하고 팍팍한 도시에서의 삶이란.

 

마포에서 출근할 때가 문득 생각났다. 늘 똑같은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하며 다녔다. 가끔 넘어져서 옷을 해먹거나 이 나이에도 무릎에 딱지를 만들곤 했었지만. 2년이 넘도록 높다란, -바리케이드라는 말은 왠지 정치적이고 울타리는 또 너무나 서정적이라 마땅히 어울릴만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지만- 그 비스무레한 키큰 철제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다. 곧 공원을 만든다는 말만 1년이 넘도록 하다가 퇴사를 반년 앞두고 공사를 시작했고, 이제는 아름다운 공원이 만들어졌다. 그 공원을 끼고 출근하면 얼마나 더 좋을까, 라고 종종 생각했었는데. 꺾어지는 담장의 장미도 아름답게 피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