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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꺼야, 반짝

 

△ 우리동네에 의류수거함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예술혼이 난무하는구만.

 

 

 

눈을 뜨니 정오가 좀 넘었나 어쨌나.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정리를 했어야 하는건데. 이사가 D-1으로 다가왔건만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 굳이 비유하자면, 오늘 시험 세 개를 치른 후 공부할 시간이 반나절 밖에 없는데 내일 전공 시험이 네 개 있는 그런 심정. (그 짓을 어떻게 4년이나 했나 몰라.)

 

요 며칠 동네를 다니며 빈 박스가 있나없나를 나도 모르게 살피게 된다. 오늘도 침 맞으러 가는 길에 괜찮은 박스가 보여서 얼른 집으로 집어왔다. 다시 같은 길을 나서는데, 박스를 찾는듯 한 아주머니의 정처없는 시선에 왠지 한 건 했다는 알 수 없는 마음이 생긴다. 이 쓸데없는 호승심이여.

 

이래저래 하루를 보내는 가운데, 홍차 우러나는 양 선배가 했던 말 하나가 서서히 피어오른다. 선배가 분명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거야. 짜샤!" . 그래. 오늘 참 눈부시게 더웠지. 이삿짐을 싸면서 창문 밖을 문득 바라보니 물끄럼한 푸른색. 저녁의 빛깔. 곧 다시 깜깜해지겠지 싶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그 푸른색이 창밖에 머물러 있었다. '이래서 여름이 좋아.' 나지막이 중얼. 곧 깜깜해졌다.

 

그러고보니 어제 낮에 잠깐 친구를 만나 여름과 겨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구나. 벌써부터 이글이글한 오월의 더위에 '우리는 대구에서 어떻게 살았냐'며 한숨을 쉬다가, 그래도 나는 여름이 좋다 했다. 겨울의 추위는 너무 끔찍하다고. 그리고 저녁 다섯시도 전에 사정없이 어두워지는 쓸쓸한 느낌이 싫다고 했다. 여름은 좋잖아. 아무리 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얼마나 좋아. 친구는 겨울이 좋단다. 퇴근도 전에 어두워지는 하늘색깔에 집에갈 명분과 안위를 얻는다 했다. 퇴근해도 되겠구나. 여름은 저녁 일곱시가 넘어도 환하게 밝아서 퇴근이 자꾸만 머뭇거려진다 했다. 

 

선배 말이 무심결에 남아서 그랬나, 해를 한 번 보고나면 다시 으쌰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나 어쨌나. 오늘 새벽까지 잠 못들고서 어제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지구 반대편의 안부가 괜스리 궁금해져서는. 

 

자.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 내일 드디어, 결국, 마침내, 정말로 삼 년 살았던 동네와 이별을 합니다. 새로운 거처를 정하지 않았다는게 포인트. 잠시만 안녕,일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성공적인 이사와 취업과 연애중에 일단 첫 스텝이 내일. 행운을 빌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