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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머리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부제 : 무덤덤한 등)

 

△ 지하철을 반대로 타는 바람에 내 삶 최고의 노을을 목격했다. 오 인생이여.

 

 

 

아침마다 급해서 급행을 탄다. 여의도로 가는 급행은 20분과 28분에 온다. 28분의 급행에 몸을 싣는 사람들은 20분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 8분을 빼앗긴 사람들이 두서없이 밀려드는 28분의 지하철에 몸을 포개고 있노라면, 내일은 꼭 8분정도는 덜 급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해보기도한다. 대구에서 올라와 처음타본 신도림의 아침 전철에 깜짝 놀랐던 몇 해전의 나 마냥, 28분 급행에 몸을 실은 아이가 이리저리 치인다. 아이와 함께 탄 아버지가 아이에게 일러준다. 원래 출근은 이래. 메르스 때문에 마스크를 쓴 키 큰 남자가, 입구로 들이치는 사람들 때문에 아이쪽으로 밀려나며 다정하게 말한다.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거 아니야.

 

나도 함께 떠밀리는 가운데, 그 광경이 퍽 마음이 든다. 그래. 누가 밀고 싶어서 밀고, 밟고 싶어서 밟겠어요. 뭐 그리 예쁘다고 하얀 마스크를 얼굴에 달고 싶겠어요. 그렇지만 누구 하나 이야기 해주면 좋겠다. 이러고 싶은거 아니라고. 그러니, 그래서 미안하다고.

 

 

 

* 출근을 해서 모니터에 정신없이 뭔가를 새겨넣다 문득 '무덤덤한 등' 이라고 수첩에 끄적였다. 그래. 어제 내 등의 표정은 참 무덤덤했겠구나. 친구는 내 등을 보면서 무언가를 조금 이야기했는데, 친구의 얼굴을 볼 겨를도 없이 바빴다. 미안한 감정이 오늘 내내 남아서 덜걱거린다. 불편하다.

 

오늘은 퇴근길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마중나온 친구를 만나, 편의점에서 순하리-주류 매대에 한 줄만 비어있었다- 를 찾아보고, 물과 아이스크림을 사고 오늘 하루의 일을 나누면서 집으로 걸어왔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겨를이 없어 못 돌려준 돈을 갚았다. 친구는 나에게 마스크를 쓰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랑에 겨우 빠졌는데 하루만에 사랑을 잃어버리다니. 내가 볼멘소리로 분통을 터트렸다. 사랑에 겨우 빠졌는데 5일동안 단 한번도 생각치 못할 정도와 강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 윤태호 <파인>. 삼촌은 젊어서는 앞 뒤 안가리고 온 삶을 갈아넣어 돈을 버는거라고 말했다.

삼촌은 최근 돈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 돈은 중요하다. 매우. 그렇지만 돈을 벌기 위해 나라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다. 그 길을 찾기까지는 버퍼링이 걸리겠지만, 나는 내 삶을 즐겁게 소비하면서 돈을 벌고, 즐겁게 소비할 것이다. 좋은 일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다. 후에 일어난 좋은 일에 대해 '이 날만은 기다렸어' 말하고 싶지도 않다. 매일 매일이 삶이다. 충실하게 소비하면서 깨어있고 싶다. 내일도 급행에 몸을 싣겠지만, 떠밀리면서 '미안해요. 저도 어쩔 수 없네요.' 라고 말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기위해 그 사람의 음악을 들어야겠다.

 

 

* 아. 예측가능한 소리들로만 채워지는 공간의 생활자이자 신봉자였으나

예측불가능한 소리들도 나쁘지않다. 점점 좋아지는 것 같기도하고.  

 

친구는 뭔가를 보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괴성을 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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