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날씨

2015년 5월 20일 : 레디, 개새... 아니 겟셋.

 

△ 나의 불안, 스트레스, 번뇌, 잡념, 고민 좀 철거해주오.

 

 

혼자하는 욕이 많아진다. 내 안에 꽉 찼다는 신호다. 본격적으로 이삿짐을 싸보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근 일주일간 머릿 속에만 있었던 '동네 우체국 방문의 날'을 드디어 현실로 이루었다. 꿈은☆이루어진다. 집에서 걸어서 10분이 채 걸릴까말까한 거리에 있는 우체국을 방문해서 6호 박스의 크기를 눈으로 가늠해보았다. 6호박스를 지그시 째려보기도 하고, 어루만져보기도 하며, 가까이 다가섰다가 멀찌감치 떨어지기도 했다. 이런 나를 우체국 직원이 흘끗 쳐다본다. 어제 새벽까지 용달차 아저씨와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했는데, 새벽 3시까지 이어진 통화의 결과(심야에 남정네와 통화라닛! 꺄아앙) 우체국 6호 박스 12개로 맞추면 얼마까지 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아저씨는 '6호 박스가 생각보다 커요!' 라고 말했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훨씬. 훨씬. 이래서는 박스 20개로도 어림없겠다.

 

 

이 자식, 그래도 이번에는 꾸준히 쓰는데? 라고 적어도 얼굴모를 한 명 정도는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생의 언젠가는 막연히 '내 책을 내겠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곧 없어졌다가 이렇게 한가하니까 다시 생각이 났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고뇌에 빠져있다가 "그래! 작가가 되는거야!" 라고 홱 몸을 뒤집어 희열에 젖었다가, 다시 천장을 보며 "작가는 무슨 자까냐! 조까다!" 투덜거린 날들이 대체 얼마인가. 춘천에서 용산으로 향하는 밤기차 안에서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요?" 라는 나의 우문에 "이미 쓰고 있어야지."라는 뒤통수가 번쩍하는 현답을 듣고 나서야, 그때부터 결심했다. 뭐라도 쓰자. 도대체 얼마동안 안 썼던거야?

 

 

소설은 재능도 관심도 없다.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 동안 쓴 글을 추려보기로 했다. 다락에도 기어올라가고,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쳤다. 어우. 인터넷의 바다는 이렇게나 산소가 부족한 곳이었구나?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부끄러운 조각들이 빛을 내며 반짝거린다. 희한하게도. 반짝반짝. 어이쿠.

 

 

건질 것이 없다는 것은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론 절망스런 일이기도 했지만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음색이라는 말처럼, 글에도 톤이라는 것이 있잖은가. 나는 나의 글이 언제나처럼 이름 모를(혹은 알수도 있는) 당신이 읽는 이 정도의 빛깔과 무게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상상이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열심히 반짝거리긴 했는데, 거 뭐. 쓰레기더미의 빈 소주병도 열심히 반짝거리긴 하니까. 놀랍도록 아름답기도 하고. 어쨌든 발전했다는거니까. 나란 사람이. 나란 사람도.

 

 

그래서 나는 계속 써보기로 했다. 운이 좋으면 정말로 내 이름을 한 귀퉁이에 새겨넣은 책 한권을 가질 수도 있겠고, 그게 아니면 뭐 아닌대로 뭔가를 꾸준히 하고 있으니까 나쁠 건 없잖아. 조금씩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삶이라는 시간을 좀 더 잘 견딜 수 있겠지. 그냥 견디는 것 보다는 뭔가-돈이든, 글이든-를 쓰면서 견디는 일이 좀 덜 무료할테니까.

 

 

(*) 이크. 나가자. 세상밖으로! (늦었다)